한여름 밤의 스파이

byGoodmorning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수많은 청춘들이 경춘선 열차에 몸을 싣던 시기였다.


특히, 한 여름의 경춘선 열차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젊은 청춘들의 열정과 일탈에 대한 부푼 기대감으로 달아올라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젊은 남녀들의 소음과 열기, 기타 소리를 뿜어 내며 대성리, 강촌, 춘천 등지로 청춘들을 실어 나르기 바빴다.


뾰족한 삼각지붕 모양의 역사에 강촌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이모 따라 쭈뼛거리며 내린 역에서 중학생은 나뿐인 듯했다. 20대 초ㆍ중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모를 포함한 네 명의 무리 또한 이제 막 스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모의 감시자이자 할머니의 스파이로 동행하게 된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였다.


기차가 떨궈놓은 서로 알지 못하는 젊음의 집단들은 역사(驛舍)를 나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모두의 목적지인 강가로 향하는 길가엔 민박집과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허름한 민박집에 우리 일행은 짐을 풀었다.


처음부터 나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이모의 친구들은 강가에 도착하자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가져간 돗자리를 펴고 음식을 늘어놓으며 콧노래도 흥얼거렸다. 노을이 서서히 강줄기를 따라 길게 늘어지자 모닥불이 하나, 둘 지펴지고 기다렸다는 듯 사방의 크고 작은 자리들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이모와 이모친구들은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가자 불콰해진 얼굴로 웃음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리고는 사이다만 쪽쪽 빨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친언니 같은 다정함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친절은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 남자 무리들에게도 퍼졌고 눈인사를 주고받고 술잔을 부딪히며 어느새 한 무리가 되었다.


그들의 눈엔 내가 안 보이는지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술에 취하고 흥에 취했다. 목 놓아 노래를 부르고, 일어서서 춤을 추고, 끊임없이 술을 마셔댔다. 빼곡히 들어선 강가의 열기는 새벽녘까지도 식을 줄 몰랐고 나는 그날 하루가 30시간은 된 듯 한 착각이 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다음 날까지도 가시지 않은 혼란스러움과 놀라움의 감정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내 머릿속은 바삐 움직였다. 내가 목격한 광란의 밤을 어디까지 할머니께 보고할 것인가.


도착하자마자 할머니 손에 끌려 방으로 들어가 마주한 독대에서 "너무 재밌었고, 이모 친구들이 잘해줬어. 다들 그냥 일찍 잤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녀들의 "한밤 중 광란(狂亂)"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 안 했다.


어느 쪽 라인에 서야 할지를 알았는지 아니면 할머니의 정신 건강을 위해 함구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할머니는 반신반의하면서도 편히 발 뻗고 주무셨고 집안의 평화는 유지되었다.


그 후로도 나는 이모친구들의 모임에 으레 끼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생활을 오랫동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