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딸기의 제철이 겨울인 듯 행세를 하고 있지만 딸기는 여름의 대표과일이다.
여름이 깊어지면, 엄마는 알이 작고 저렴한 딸기를 박스 채 구입해 오셨다. 박스 안에 빽빽하게 들어앉은 딸기는 지들끼리 몸을 부딪쳐 흐물거리는 것들도 제법 눈에 띄곤 했다. 그런 보잘것없는 딸기가 달콤한 딸기잼으로 환골탈태하는 마법이 한여름의 우리 집 부엌에서 매년 일어났다.
딸기는 우선 여러 번 깨끗이 씻어 꼭지를 따고 채반에 받쳐 물기를 쪽 뺀다. 물기가 거둬진 딸기를 커다란 냄비에 붓고 순백의 눈 같은 설탕도 넣어 함께 끓이기 시작한다. 딸기와 설탕을 섞어 으깨 놓은 딸기죽이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초반부터 나무주걱은 쉼 없이 한 방향으로 저어야 한다.
냄비 가장자리부터 딸기죽이 끓어오르고 풀떡풀떡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손길은 더욱 빨라진다.
풀떡거리다 튀어 오른 딸기죽에 데지 않으려 한껏 주의를 기울여도 한, 두 방울은 어김없이 엄마의 팔을 가격한다. 급하게 수돗물에 팔을 식히고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오기 가득한 자세로 다시 젓기에 돌입하는 엄마의 눈빛은 전래 없이 심각하다.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고 수십 번의 반복된 팔운동으로 팔이 저릴 즈음이 되면 불을 줄이고 나무 국자를 들어 들러붙는 정도와 딸기죽의 농도를 확인한다.
마침내 기세 좋던 딸기죽의 패기는 사라지고 전운은 엄마에게로 기운다. 엄마의 팔운동도 멈추고 가스불이 딸깍!
하고 꺼지면 흘긋흘긋 멀리서 바라만 보던 내가 드디어 냄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이다.
"지금 못 먹어?"
"아직 뜨거워서 안돼!"
동동거리며 미리 사다 놓은 하얀 식빵만 애달프게 쳐다보는 시간이 끝날 것 같지 않게 아득하다.
딸기잼이 몸을 식히는 사이 엄마는 그제야 땀을 닦고 머리칼이 잔뜩 들러붙은 얼굴을 선풍기 바람에 들이댄다. 그것도 잠시, 딸의 조바심 나는 눈과 마주치자 선풍기 머리를 서둘러 냄비 쪽으로 돌려놓는다.
선풍기 바람의 선행 덕분일까 서늘한 기가 들기 시작한 걸쭉한 잼이 식빵에 듬뿍 올려지고 연거푸 입안으로 들어오는 황홀경의 의식이 시작된다. 점심을 거르고 기다린 탓에 허기진 배는 쉬이 차지 않는다. 잼 바른 빵을 쉼 없이 입으로 나르던 손이 둔해지고 식빵이 거의 바닥날 즈음이 되면 빨간 여름은 투명한 병 속에 가둬진다.
습한 여름, 엄마의 한바탕 전쟁도 막을 내리고 한 겨울에도 여름을 꺼내 맛볼 수 있는 계절의 선물이 부엌 찬장에 쪼르르 자리한다.
대문사진: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