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는 착각

부끄러움 시리즈 1

byGoodmorning

결혼과 동시에 남편 온라인 게임 때문에 수원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으니 수원에서 산 해수만 해도 거의 30년이 되어간다.


학창 시절을 모두 서울에서 마쳤지만 서울에서 지낸 시간보다 수원에 정착해 살고 있는 시간이 더 긴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도 "수원은 내가 좀 알지"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듯하다.


아이가 4살 때쯤 나는 재취업을 해 수원에 위치한 모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업무상 일본 업체를 만나는 일이 많았고 회의가 끝난 후에는 스몰토크처럼 의례적으로 수원에 대한 질문이 오가고는 했다.


대부분 수원의 경제ㆍ문화 ㆍ관광지 등에 관한 일반적인 질문이어서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수원이 외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도시가 아니기에 수원에 대한 간략한 정보는 암기하고 있었고 암기한 정보 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질문과 답이 오갔다.


그런데 그날은 내 대답이 수원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는지 일본 거래처 부장은 급기야 주말에 수원 화성에 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꺼내며 화성 가이드 해 줄 사람이 없는지 물었다.


"제가 화성 관광 가이드 분을 알아봐

드릴까요?"라고 묻자 드디어 일본 사람의 속내를 말한다.


"이 さん(상. 호칭)이 수원에 오래 사셨으니 가이드를 좀 해주면 안 될까요? 사례는 별도로 하겠습니다. 언어 문제도 있고..."


"부장님, 죄송한데 제가 수원화성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그 부장님의 놀란 눈과 어색한 웃음의 침묵 속에 대화는 끝났다. 수원에 대한 서류 정보에만 능통했던 내 답이 빛을 잃어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매뉴얼만 믿고 아는 척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그때 느꼈던 당혹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현장학습 겸 수원화성에는 한 번 다녀왔다. 화성을 둘러보며 그날의 기억이 다시 소환된 건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르겠다.


수원은 3600만 평이 조금 넘는 도시이다. 좁지 않은 도시에서 내가 가본 곳은 솔직히 집 주변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다. 쳇바퀴 돌 듯 몇 군데만 계속 반복해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편의시설 위주로. 그럼에도 누군가 수원에 대해 물어오면 어김없이 아는 척을 한다.



알고 있는 것과

안다고 믿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안다고 믿는 것은 어쩌면 모른다와 동의어이다. 모르고 있는 내 상태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에서 나온 착각일 수 있는 것이다.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은 종종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면 모르는 것이니 외우고 또 외우라고 말하셨다. 지식은 외우고 또 외워 아는 것이 될 수 있지만 살다 보면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들이 점점 늘어간다.


사람이 특히 그렇고,

나를 둘러싼 상황들이 그렇다. 오히려 알고 있는 일들보다 안다고 착각하는 일들이 더 많은지도 모르겠다. 그게 익숙해져 착각인지 아닌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제동을 걸고 챙겨보고 싶다. 내가 얼마나 안다는 착각 속에 있는지, 어떤 것을 착각하고 있는지.

말을 줄이고 아는 척을 삼가야 하는 이유를 톺아보기 위해.





사진; 수원 화성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