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無知)

부끄러움 시리즈 2

byGoodmorning

결혼 후, 회사를 그만두고 한가로운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참에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교류 맺고 있는 일본 학교의 선생님이 자녀들을 데리고 한국에 왔는데 통역이 갑자기 펑크가 났어. 11시까지 독립문 앞으로 와서 통역해 줄 수 있어?"


할 줄 아는 게 일본어라 일본과 관련된 일로 경제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회사 업무와 통역, 학원강사 등등. 마침 쉬고 있던 시기였고 동생의 전화로 활기가 솟아나는 것을 느끼며 신나서 대답했다.


"어, 그래?

알았어. 서둘러 준비하고 나갈게."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왜 독립문 앞일까'라는 의문은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뜨거운 햇빛 아래, 동생과 가족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었고,

동생의 얼굴은 날 보자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친근하게 서로 인사말을 나눈 후,

근처에서 무엇을 보고 싶은지 묻자

아이들의 아빠는 결연한 어조로,


"저는 도쿄ㅇㅇ중학교의 역사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 일본이 한국점령기에 행했던 만행을 제대로 알려주고자 한국에 왔으니 서대문 형무소를 둘러보며 한ㆍ일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그 옆엔 초등학교 고학년생인 두 남자아이들이 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이를 어쩌지.

난 서대문 형무소가 그날 첫 방문이었다.

더구나 역사는 학창 시절부터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어서 줄곧 외면하고 살았다.


지금까지 만난 일본인들은 내 앞에서 민감한 역사문제를 일부러 거론하지 않는 교양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서로에게 안전한 화법이었다. 독도나 위안부 문제등으로 한ㆍ일관계가 삐걱거릴 때도 일절 언급 없이 업무에만 집중했다.


나 또한 오랫동안 일본인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역사에 관련한 화두를 꺼낸 적이 없었기에 역사에 무지했어도 불편 없이 업무나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내 눈앞에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이 있었고 과거 식민지배 피해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의 국민을 통해 자신의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시켜주고 싶어 한 아빠가 있었다.


서대문 형무소는 유관순열사를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돼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당하고 사형된 곳이다. 한글로 적혀있는 안내판의 사형도구의 이름과 고문 방법들은 한글로도 이해를 못 할 지경인데 통역을 해낼 리 만무했다. 게다가 한ㆍ일 역사에 대해 설명하기에도 내 지식은 빈약하고 초라했다.


겨우 겨우 이어붙이 듯 보잘것없는 통역을 하며 입술은 바짝바짝 말라갔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이 둘은 끝까지 내 설명에 집중하며 예의를 지켜 주었고 그 모습에 내 속은 더 까맣게 타들어갔다.


남대문 시장 앞까지 그들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나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당황스럽고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오랫동안 수많은 일본인들과 만났다. 그럼에도 부끄러운 자국의 역사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은 그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제도권 안의 학교 교육으로는 불가능한 진실한 현장 교육을 시켜주고자 했다. 그날, 그의 바람이 나의 무지한 통역으로 결실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타국의 언어는 그 나라의 오랜 역사와 문화의 표징이다. 모국어 또한 그러하다.

문화와 역사의 깊은 인식 없이 양국의 언어만을 구사하며 그걸 업으로 무신경하게 살아왔다. 그 결여된 시간의 총합이 타인의 올바른 의지를 좌절시키고 내 삶에 부끄러움을 더하는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