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맛깔나다 44
내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시골 생활은 공간도 사람도 시간도 흠잡을 것이 없었고, 한겨울 펑펑 내리던 눈은 금상첨화였다. 우리 동네는 유난히 눈이 많았다. 동네 어른들은 바다와 강이 가까워서 그렇다고 하셨다. 버스를 두어 번이나 갈아타고, 한참 갔던 걸로 봐서는 바다가 그리 가까운 건 아니었지만, 어른들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눈 좋아하는 내게는 눈만 많이 오면 그만이었다.
주로 집안에서 꼼지락 대던 나였지만, 겨울은 달랐다. 눈이 수북이 쌓인 아침이면, 삽을 들고 대문 앞에다가 동생들이 놀 작은 미끄럼틀을 만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놀라지 마시라! 시골 사는 아이에게 삽은 장난감이자 생필품이었다. 그리고 미끄럼틀이라고 해봐야 이미 있는 경사로에 눈을 살짝 덮은 다음, 물을 조금 뿌리는 것이 전부니까 말이다. 채 1미터도 되지 않는 미끄럼틀이었지만, 만드는 재미가 좋았고, 그리고 실제로 타보면 놀랍게도 나름 짜릿함도 있었다.
삽질이 끝나면 동생들과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비닐 비료 포대 하나씩 들고 비탈길에 올라 속도감 가득한 진짜 미끄럼틀도 탔다. 동생들 몰래 고드름을 따먹으러 다닌 건 나만의 비밀이기도 했다. 그렇게 놀다 보면 이상하게도 하루해가 너무 빨리 가버렸다. 시간은 매일 하루 24시간 정량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종일 놀다 보면, 우리 손은 빨갛다 못해 검붉어졌다. 그 추위에 장갑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성급하게 우리 어머니를 탓하지 마시라! 사실 어머니는 할 만큼 하셨다. 겨울 초입부터 우리 삼 남매를 위해 족히 30켤레가 넘는 장갑을 뜨고 또 뜨셨으니 말이다. 손재주 좋으셨던 어머니는 우리 조끼며 스웨터도 직접 떠주셨고, 그런 어머니에게 장갑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그러나 사실 누워서 떡 먹는 건 진짜 위험하다. 체하거나 사레가 들릴 수도 있고,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그러니 절대 누워서 떡을 먹으면 안 된다. 하여튼 어머니에게 장갑 뜨기는 식은 죽 먹기였지만, 식은 죽도 너무 많이 먹으면 질리고, 배가 불러서 못 먹는다. 우린 어머니를 질리게 했다.
어머니표 장갑을 끼고 신나게 놀다가 손이 시려지면 우리는, 우리 가게로 쪼르르 몰려갔다. 가게에는 연탄아궁이가 있었는데, 그곳에 젖을 대로 젖어 축축해진 장갑 낀 손을 대면, 하얀 김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요정이라도 나올 듯한 그 모습에 넋을 빼고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얼음장 같던 손에서 아찔한 뜨거움이 느껴졌다. 얼른 손을 뺐지만, 이미 늦었다. 장갑 대신 손바닥이 보였다. 그렇게 어머니는 매일 장갑을 떠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농한기라도 어머니는 살림에, 가게에, 동네 부녀회 일까지 몹시 바쁘셨다. “한 번만 더 태워 먹으면 장갑은 절대 없어.”라고 엄포를 놓으셨다. 우린 힘차게 “네”라고 했지만, 바로 그날 다 태워 먹었다. 어머니는 여장부답게 ‘여아 일언 중천금’, 약속을 지키셨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말에 바카라임을 져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는 게 좋아도 긴 시간 맨손으로 눈을 만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안방 장롱을 뒤지고 뒤졌다. 색색이 예쁜 장갑 대신, 아버지의 구멍 난 거무튀튀한 양말들이 보였다. 꿰매기 위해서 한 곳에 모아놓은 그 양말을 양손에 두세 개씩 덧씌워서 장갑처럼 꼈다. 아버지의 커다란 양말은 조그만 우리 손에는 아주 넉넉했고, 멋지진 않았지만, 충분했다. 덕분에 우린 원 없이 놀았고, 어김없이 손이 시려지면, 또 연탄아궁이 앞에 모였다. 그러고는 아버지의 구멍 난 양말에 불가역적인 구멍 내버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간덩이가 부은 나머지, 멀쩡한 아버지 양말에까지 손을 대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아버지 양말을 다 해 먹었다. 양말만큼이나 많은 떡볶이도 함께 먹어 치우면서 말이다.
도시 애들은 분식집이라고 하는 곳에서 학교가 끝나면 떡볶이를 먹는다고 했다. 그 애들이 먹는 거라면 나도 먹어야 했다. 음식 솜씨 좋은 어머니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떡볶이를 용케도 해주셨다. ‘떡볶이’라는 이름대로 떡을 볶은 것이다. 가겟방 연탄아궁이에 까만 가마솥뚜껑을 거꾸로 뒤집어 놓고 기름을 두르셨다. 그리고 설날에 먹다 남은 가래떡을 가마솥뚜껑에 넣고 고추장과 설탕까지 더하셨다. 그러고는 떡이 익을 때까지 휘적휘적 저으셨다. 밖에서 노느라 허기 가득했던 우리는, 쉴 새 없이 콧구멍을 벌름거렸고, 매콤 달콤한 향이 가게와 콧속을 가득 메웠다. 인생 첫 떡볶이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지금과는 조금 다른 소박한 재료와 방법이었지만, 제아무리 소문난 맛집이어도 그때 그 맛을 이길 수는 없다. 제아무리 값비싼 재료를 넣어 만들어도 절대 그 맛을 이길 수 없다.
가겟방 연탄아궁이에 옹기종기 모여 손도 녹이고, 떡볶이도 맛보며 혼도 나던 그 겨울의 모든 것은, 소박하지만 강력한 행복이었다. 그 행복 여행을 위해 올겨울 아버지 양말을 손에 껴볼까? 그리고 떡볶이를 먹으러 가볼까? 혹시 오며 가며 그런 여자를 만나거든 너무 걱정하지 마셔라. 다소 과격하게 비타민 충전 중인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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