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미 귀신

세상 맛깔나다 43

by오늘나

시도 때도 없이 토하기!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다면 국위 선양할 자신이 있다. 누가 와도 이길 수 있다. 어려서부터 골골댔던 탓에 냄새에도 체하는 신공을 발휘했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토하고 긴급 처방으로 손가락을 땄다. 덕분에 손가락에는 항상 바늘 자국이 넘쳤고, 용하다는 병원에 다니며 엉덩이며 팔에 주사도 숱하게 맞았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일상이 멀미였기에, 차를 탄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힘든 일이었다. 다행히 시골에서 차를 탈 일은 많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어린이날이 되면 우리 가족은 어김없이 버스를 탔다. 그 시골에서도 부모님은 어린이날마다 우리를 위해 나들이를 하셨다. 대부분 가까운 읍내였지만, 딱 한 번 도청 소재지가 있는 아주 먼 곳에 갔었다. 놀이기구까지 있던 큰 공원이었다. 부모님은 멀미 귀신 큰딸을 위해 거금을 들여 택시까지 불렀다. 그러나 여지없었다. 그 근사한 택시 안에다 기어이 폭포수 마냥 한 바가지를 시원하게 쏟았다. 덕분에 아버지는 추가 요금 지불에, 어머니는 뒷수습에 바쁘셨다. 힘들고 미안했지만, 놀이기구와 많은 꽃, 울창한 나무와 호수까지 가득한 도시의 ‘삐까뻔쩍’한 공원은 정말 멋졌다. 고통스러운 멀미는, 근사한 세상을 만나기 위한 대가였다. 세상엔 공짜가 없으니 말이다.


수학여행도 그랬다. 6학년이 되자마자부터 기다렸던 수학여행은 신나는 서울 구경을 의미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63 빌딩도 본다고 했고(정말 차를 타고 지나치면서 보기만 했다), 국회의사당(일정 중 가장 따분한 장소였다)도 간다고 했다. 새 옷까지 사고 보니, 더 기다려졌다. 그러면서도 따라오는 걱정은 어쩔 수 없었다. 모두 함께 있는 버스 안에서 까만 비닐봉지에 얼굴을 파묻고 우웩 거리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수치스러웠다. 그런 나를 위해 어머니는 최고급 멀미약을 사다 주셨다. 흔히 보던 마시는 멀미약이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귀에 붙이는, 그래서 왠지 멋져 보이는 멀미약이었다. 키미테! 지금이야 각종 부작용으로 강력한 경고가 따르지만, 당시에는 그저 최신식 멀미약일뿐이었다. 부모님은 키미테 말고도 소나무잎과 귤이라는 비상조치를 더 챙겨주셨다. 요즘은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귤이지만, 그땐 겨울이 아니면 구경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그 가을, 부모님은 어딘가에서 기어코 귤을 구해 오셨다.


부모님 사랑 가득 담고, 드디어 2대의 관광버스에 나누어 탄 우리들은 왁자지껄 서울로 출발했다. 흥분 가득한 버스는 곧장 우주로 날아갈 수도 있을 만큼 힘이 넘쳤다. 하하 호호, 깔깔깔,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나만 빼고······. 물론 나 말고도 멀미하는 친구들은 있었지만, 아직 세상이 나만 중심으로 돌던 좁은 시선에는 미처 닿지 못했다. 나만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다. 엄청 비싼 키미테가 너무 쉽게 배신했다.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슬슬 온몸의 힘이 빠지고, 머리는 뽀개질 듯 아프고 울렁거리며, 금방이라도 토할 태세였다. 까만 비닐봉지를 손에 꼭 움켜쥔 채, 친구들 후각과 청각은 물론 내 품위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텼다.


실패한 ‘키미테’ 작전을 폐기하고 바로 ‘소나무’ 작전에 돌입했다. 소나무 이파리를 입으로 잘근잘근 씹자, 콧구멍을 하나로 뚫어버릴 것 같은 강력한 향이 뇌에 바로 전달됐다. 울렁거림이 진정되었다. 너무 강력해서 눈물까지 났지만, 메슥거림만 사라진다면 종일 울어도 상관없었다.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고 수다를 떨며 놀 때, 나는 곧게 앉아 오로지 소나무 이파리만 잘근거렸다. 하지만 곧 위기가 찾아왔다. 아무리 씹어도 뇌가 더 이상 반응을 하지 않은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다행히 휴게소에 도착했다. 자연의 신선한 공기가 콧구멍 가득 들어오니, 뇌도 이제야 살 것 같다고 울부짖었다. 휴게소에서 살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버스를 타고 온 만큼 더 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운명을 다한 내 뱃속 모든 잔해를 지켜야만 했다. 쓸데없이 위쪽 출구로 잘못 나오게 되면, 여러 사람이 힘들어질 것이 뻔하니 말이다.


그래서 효과 다 한 ‘소나무’ 작전을 미련 없이 버리고, 바로 ‘귤껍질’ 작전에 돌입했다. 과육은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 순간 나를 지켜준 건 귀한 과육 대신 귤껍질이었다. 귤껍질을 코끝에 대니 그 상큼한 향이 숨통을 틔워 주었다. 손끝으로 귤껍질을 톡톡 눌러주면 노란 즙이 나오면서 향이 더욱 강해졌다. 덕분에 기적적으로 토하지 않고 서울 입성에 성공했다. 작은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귤껍질을 너무 과하게 비벼댄 탓에 코끝이 노랗게 된 것이다. 상관없었다. 힘들고 힘든 그 긴 시간, 나름의 방법을 총동원해서 멀미를 극복한 내가 몹시 뿌듯할 뿐이었다.


게다가 멀미 지식까지 획득했다. 머리를 의자에 대면 차의 흔들림이 머리에 그대로 전달돼서 멀미가 더 심해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최대한 천천히 호흡해야 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내 모습이 대견하고 대단했다. 요즘처럼 손에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바로 부모님께 전화해서 징징거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수학여행 기간 내내 부모님과 통화도 할 수 없던 시절 덕분에, 나는 오롯이 혼자서 단단해졌다. 몸은 힘들었지만, 경험을 통해 배움을 얻은 진짜 수학여행이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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