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2027 나의 예상 10개 키워드

나는 먼저 열 개의 이름을 붙여봤다

by일현 조성훈
한쪽에서는 선택을 대신해주겠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직접 고르라고 한다. 내가 바라본 2027년은 그 두 길이 갈라지는 자리에서 시작한다. 이미지 기획·디렉팅: 일현 조성훈





처음부터 거창한 생각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숟가락이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트렌드 코리아’라는 여섯 글자가 검색창을 휩쓴다. 새 바카라이 나오고, 키워드가 공개되고, 사람들은 뜻을 검색하고, 블로그와 유튜브에는 기다렸다는 듯 해설이 올라온다.

그걸 보다가 생각했다.

나도 좀 얻어먹으면 안 되나.

조회수라는 큰 냄비가 끓고 있는데 숟가락 하나 슬쩍 넣는다고 국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시작했다.

그런데 숟가락을 들고 가까이 가보니 일이 커졌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꼭 앞장설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왜 그쪽으로 가는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이미지 기획·디렉팅: 일현 조성훈 / 생성형 AI 활용


《트렌드 코리아 2027》은 9월 30일 발행 예정이고, 현재 공개된 슬로건은 ‘ALPHA SHEEP’이다. 바카라 소개에는 2027년을 휩쓸 두 흐름으로 슬롯경제적 양극화와 인공지능이 언급돼 있다. 무리에 휩쓸리기보다 자기 생각을 먼저 실행하는 존재가 되자는 뜻도 붙었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열 개의 키워드는 뭘까.

맞히겠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 것은 다른 질문이었다.

‘지금 이미 시작된 것들 중에서, 내년에는 이름까지 얻게 될 것이 무엇인가?’

미래를 예측한다는 말은 묘하다.

대부분의 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미 조금씩 행동하고 있고, 돈은 먼저 움직이고 있으며, 정부는 예산을 쓰고, 기업은 사람을 뽑고, 서비스는 사용자를 모은다.

다만 아직 이름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름부터 만들어보기로 했다.






예전에는 검색을 대신해달라고 했다. 이제는 비교하고, 고르고, 예약하는 것까지 맡기기 시작한다. 편해질수록 내가 남겨둘 선택이 무엇인지가 중요해진다. 이미지 기획: 일현 조성훈


첫 번째는 ‘맡김소비’다.

AI에게 물어보는 시대를 지나, AI에게 시키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봤다.

“제주도 여행 일정 짜줘.”

여기까지는 지금도 한다.

그런데 다음 문장은 다르다.

“그중 제일 괜찮은 걸로 예약해 놔.”

검색도 비교도 결제 직전의 판단도 사람이 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도 2027년을 향해 ‘전 국민 1인 1 AI 에이전트’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기술이 정말 그 수준까지 생활 안으로 들어온다면 소비자의 역할은 ‘찾는 사람’에서 ‘승인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나는 이걸 ‘맡김소비’라고 불러보기로 했다.



아끼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같은 사람이 천 원을 아끼고, 다른 곳에서는 몇십만 원을 망설이지 않는다. 이미지 기획·디렉팅: 일현 조성훈 / 생성형 AI 활용


두 번째는 ‘양끝소비’.

요즘 소비를 보다 보면 이상한 장면이 자주 보인다.

점심값 천 원은 아까운데 콘서트 티켓 20만 원은 결제한다.

생활용품은 최저가를 뒤지면서 가방은 명품을 산다.

모든 것을 아끼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비싸게 사는 것도 아니다.

중간을 없앤다.

싼 것은 더 싸게 사고,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더 비싸게 산다.

2027년의 큰 화두로 이미 ‘양극화’가 제시된 만큼, 이것이 계층 간 양극화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소비 안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을 봤다.



너무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많아지면, 오히려 오래 걸렸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안에 사람이 있었다는 흔적도 함께. 이미지 기획·디렉팅: 일현 조성훈 / 생성형 AI 활용


세 번째는 내가 꽤 마음에 들어 하는 이름이다.

‘휴먼씰’.

AI로 글을 만들고, 그림을 만들고, 영상을 만들고, 광고를 만드는 일이 너무 쉬워지면 무엇이 비싸질까.

나는 오히려 ‘사람이 했다는 사실’이 비싸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직접 썼는가.

실제로 찍은 사진인가.

사람이 만들어낸 물건인가.

실제 경험한 사람이 남긴 후기인가.

결과물만 봐서는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가 오면 ‘인간이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인증마크가 된다.

그래서 Human + Seal.

휴먼씰.

재미있는 건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곳에서는 인간이라는 표시가 더 비싸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혼자 일한다는 말의 뜻도 달라질지 모른다. 사람은 한 명인데, 하는 일은 이미 작은 조직에 가깝다. 이미지 기획·디렉팅: 일현 조성훈 / 생성형 AI 활용


네 번째는 ‘솔로프라이즈’.

Solo와 Enterprise를 붙였다.

1인기업은 오래된 말이다.

그런데 앞으로의 1인기업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사람은 한 명인데 혼자 일하지 않는다.

조사하는 AI가 있고, 자료를 정리하는 AI가 있고, 디자인을 만드는 AI가 있고, 고객 문의를 처리하는 AI가 있다.

2026년 상반기 전체 창업기업 수는 전년보다 감소했지만 정보통신업 창업은 59.4% 증가했고, 기술기반 창업은 14.2% 증가했다. 전체 창업에서 기술기반 창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1.8%까지 올라왔다.

그 숫자가 곧바로 ‘AI 1인기업 시대’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방향은 흥미롭다.

한 사람이 회사를 가진다는 말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작은 회사를 ‘데리고 다니는’ 시대.




다섯 번째는 ‘알고탈출’이다.

이건 앞의 것보다 확신이 낮다.

그런데 그래서 더 재미있다.

추천 알고리즘이 나를 너무 잘 알게 되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내가 이걸 좋아하는 건가, 계속 보여줘서 좋아하게 된 건가.’

그때 사람들은 일부러 추천받지 않은 음악을 듣고, 검색 상위에 없는 식당을 찾아가고, SNS에 뜨지 않는 물건을 고를지도 모른다.

Algorithm에서 탈출한다.

알고탈출.




여섯 번째는 ‘관계충전’.

서울시의 ‘외로움안녕120’은 개소 1년 만에 누적 상담 4만 건을 넘겼고, 하루 평균 상담은 125건이었다. 특히 야간·심야 상담이 61.4%를 차지했다.

이 숫자를 보면서 외로움보다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사람들은 관계가 필요할 때 연락할 곳을 찾고 있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반드시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은 아니다.

늘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필요할 때 만나고, 필요할 때 연결되고, 다시 자기 공간으로 돌아온다.

관계까지 구독처럼 변한다는 식으로 말하면 너무 차갑다.

그래서 나는 관계충전이라고 부르고 싶다.



열 번 고치고, 다시 그리고, 직접 손을 대는 일은 점점 비효율적으로 보일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래서 더 값이 생길 수 있다. 이미지 기획·디렉팅: 일현 조성훈 / 생성형 AI


일곱 번째는 ‘수고프리미엄’.

이건 조금 역설적이다.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쉬워질수록 어렵게 만든 것이 가치가 생긴다.

AI로 10초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데 직접 그린다.

한 번에 번역할 수 있는데 직접 문장을 고친다.

자동으로 추천받을 수 있는데 직접 돌아다니며 찾는다.

효율만 놓고 보면 이상한 행동이다.

그런데 사람은 효율로만 물건을 사지 않는다.

‘이걸 만드는 데 누군가의 시간이 들어갔다.’

그 시간이 상품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여덟 번째는 ‘AI분신’.

지금의 AI는 대부분 내가 필요할 때 불러 쓰는 도구다.

그런데 내 일정과 취향과 과거의 선택을 기억하고, 내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알고,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대신 처리하기 시작하면 관계가 달라진다.

도구라기보다 나의 일부가 밖으로 나온 것에 가까워진다.

‘나 대신 행동하는 또 하나의 나.’

그래서 AI분신이다.




아홉 번째는 ‘자산루틴’.

예전에는 재테크라고 하면 마음먹고 공부해야 하는 별도 활동에 가까웠다.

요즘은 월급이 들어오면 소비와 저축과 투자와 연금과 보험이 한 화면에서 같이 움직인다.

돈을 불리는 일이 특별행사가 아니라 일상 관리가 된다.

양치하고, 운동하고, 통장 보고.

그래서 자산루틴.




마지막은 ‘오래씀경제’.

새것을 사는 것이 언제나 가장 좋은 선택이던 시대에서 조금씩 벗어날 가능성을 본다.

고쳐 쓰고, 중고로 사고, 리퍼 제품을 고르고, 비싼 물건은 수명을 늘린다.

환경 때문일 수도 있고 가격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행동이 같다면 시장은 움직인다.

‘얼마나 많이 사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쓰느냐’가 새로운 경제성이 되는 것이다.




열 개를 써놓고 보니 이상한 것이 하나 보였다.

처음에는 열 개의 트렌드를 찾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두 개의 힘이 싸우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인간이 자꾸 AI에게 무언가를 넘긴다.

찾는 것을 넘기고,
비교하는 것을 넘기고,
만드는 것을 넘기고,
결정하는 것까지 넘긴다.

그런데 반대쪽에서는 인간이 다시 자기 것을 찾는다.

내가 골랐다는 것.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
내가 직접 수고했다는 것.
누군가와 실제로 연결됐다는 것.



답이 나온 뒤에는 누구나 그럴듯한 이유를 붙일 수 있다. 그래서 답이 나오기 전에 적어두기로 했다. 틀리면 틀린 대로 남겨두려고. 이미지 기획·디렉팅: 일현 조성훈 / 생성형 AI


나는 2027년을 이렇게 보고 있다.

AI가 인간을 밀어내는 해가 아니라,

어디까지 맡기고 어디부터는 다시 가져올지를 정하는 해.

그리고 그 싸움의 한가운데에 소비가 있을 것이다.

물론 틀릴 수 있다.

아니, 열 개를 전부 맞힐 가능성은 낮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실제 《트렌드 코리아 2027》의 열 개 키워드가 공개되면 이 글을 지우지 않을 생각이다.

비슷하면 비슷한 대로,
틀리면 틀린 대로,
전혀 예상 못 한 것이 나오면 그것도 그대로 남길 것이다.

예측이라는 건 결과가 나온 뒤 문장을 고치기 시작하면 게임이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처음 목적을 잊을 뻔했다.

나는 원래 트렌드 코리아 검색 조회수에 숟가락 하나 얹으려고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저것 뒤지다 보니 어느새 열 개의 이름을 만들고 있었다.

이 정도면 숟가락을 얹은 건지,

냄비 옆에서 새 국을 끓인 건지 모르겠다.

9월 30일이 조금 궁금해졌다.

내 숟가락에 뭐가 올라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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