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기억하는 사람》의 트레일러와 세계관 홈페이지를 만든 이유
소설을 쓰고 나면 보통 무엇을 할까.
출판사를 찾거나,
표지를 만들거나,
바카라 소개를 쓰거나,
홍보할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나도 그래야 했다.
그런데 나는 또 순서를 거꾸로 갔다.
원고를 다듬다가 음악을 만들었고,
음악을 듣다가 장면을 다시 봤고,
장면을 보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얼굴이 필요해졌다.
얼굴을 만들고 나니 움직이는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결국 트레일러까지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이런 식이었다.
무엇인가를 완성한 뒤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지막에 필요한 모습을 상상하고
다시 앞 단계로 돌아온다.
A에서 B로 가고 B에서 C로 가는 대신,
C를 먼저 보고 A를 다시 만지는 식이다.
이번 소설 《나만 기억하는 사람》도 그랬다.
이 작품에는 이상한 규칙이 하나 있다.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름도 남는다.
사진도 남는다.
함께 있었던 일도 기억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소중했는지만 사라질 수 있다.
나는 이 설정을 글로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한 남자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크게 웃었던 날을 기억한다.
어디서 만났는지도 알고,
누가 있었는지도 알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안다.
그런데 누군가 묻는다.
“재밌었어?”
남자는 대답한다.
“녹음 들어보면 그랬나 보지.”
기억은 있는데 감정이 없다.
내가 보고 싶었던 장면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처음에는 캐릭터 시트를 만들었다.
강서하.
한도윤.
박지안.
민재.
박정우.
정혜원.
그리고 숫자를 세는 인형, 또셈.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그림 한 장에서는 멀쩡했던 인물들이 영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서로 얼굴이 닮기 시작했다.
안경을 쓰지 않은 인물이 갑자기 안경을 쓰기도 했고,
40대 인물이 어느 순간 훨씬 나이 든 사람으로 변하기도 했다.
웹툰 스타일로 만들라고 했더니
대사가 말풍선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한동안 화면을 보면서 이런 말을 반복했다.
“아니, 얘가 왜 얘가 됐어.”
생성형 AI는 무엇이든 만들어 주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작업해 보면 무엇을 유지해야 하는지를 계속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
얼굴 하나,
옷 하나,
나이 하나,
장면 하나가 어긋나도
이야기 전체의 신뢰가 깨진다.
그래서 캐릭터를 다시 분리했다.
누가 안경을 쓰는지,
누가 몇 살인지,
누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얼굴과 체형을 유지해야 하는지 하나씩 고정했다.
대사는 한국어로 두되,
영상 지시문은 영어로 세밀하게 작성했다.
말풍선은 금지했다.
실사화도 금지했다.
인물끼리 얼굴을 섞지 말라고 반복해서 적었다.
그렇게 10초짜리 장면들을 하나씩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림으로만 존재하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친구 셋이 웃고 있었다.
강서하는 한도윤을 바라봤다.
또셈은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숫자가 줄었다.
47.
46.
45.
“0이 되면 어떻게 돼?”
그 장면을 처음 제대로 봤을 때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머릿속에서만 알고 있던 장면을
누군가 먼저 촬영해 놓은 것을 뒤늦게 발견한 것 같았다.
하지만 영상 하나를 만들었다고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작품 자체의 공간을 만들었다.
WORLD ARCHIVE 47.
《나만 기억하는 사람》의 세계관 홈페이지다.
그 안에는 작품 설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물들이 있고,
기록이 있고,
OST가 있고,
영상이 있고,
또셈이 있다.
등장인물을 누르면 그 사람의 기록이 열린다.
트레일러도 홈페이지 안에서 바로 볼 수 있게 했다.
나는 이 과정을 거치며 한 가지를 다시 확인했다.
소설은 반드시 글만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음악이 없어도,
영상이 없어도,
홈페이지가 없어도
이야기는 서 있어야 한다.
그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한 작품을 기억하게 만드는 입구는 하나일 필요가 없다.
누군가는 문장으로 들어올 수 있고,
누군가는 음악으로 들어올 수 있고,
누군가는 47이라는 숫자를 기억할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이상하게 생긴 작은 인형 하나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나는 소설을 영상으로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다른 매체들을 이용해
다시 소설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만들고 있다.
이번에는 그 문 하나를 열었다.
《나만 기억하는 사람》 공식 트레일러
WORLD ARCHIVE 47 공식 홈페이지
https://memory47.joseonghwun.workers.dev/
《나만 기억하는 사람》 네이버 블로그 글
https://m.blog.naver.com/say3589/224402290565
기억은 남았다.
사랑했던 이유만 사라졌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에 대한 모든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 사람을 사랑했던 이유만 사라진다면.
그 관계는 여전히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일현 조성훈 공식 홈페이지
https://ilhyun.joseonghwun.workers.d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