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

AI를 대하는 사람들의 기준은 왜 이렇게 자주 바뀔까

by일현 조성훈
발끝명부 및 AI로 장편소설 만들기 저자 일현 조성훈 프로필 이미지 입니다.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

AI를 대하는 사람들의 기준은 왜 이렇게 자주 바뀔까

요즘 AI 이야기를 보다 보면 가끔 웃길 때가 있다.

어르신이 뒤늦게 AI를 배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반응이 참 따뜻하다.

“정말 대단하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네요.”

“AI 덕분에 새로운 인생이 열렸군요.”

나도 그런 이야기를 보면 좋다. 새로운 도구를 배워서 예전에 하지 못했던 일을 시작하는 게 뭐가 나쁘겠는가.

그런데 이상한 건 그다음이다.

조금 젊은 사람이 AI를 활용해서 소설을 썼다고 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질 때가 있다.

“그게 네가 쓴 글이냐?”

“AI가 써준 걸 가지고 작가라고?”

“그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나?”

같은 AI인데 누구에게는 새로운 도전이고 누구에게는 반칙이다.

이게 참 재미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어르신이 AI로 바카라 한 권 냈다고 하면 나와 경쟁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마음 편하게 박수를 쳐주는 건가?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마음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이에 따라 우리가 붙이는 이야기가 다른 것도 있을 것이다. 어르신에게는 ‘도전’이라는 이야기가 먼저 붙고 젊은 사람에게는 ‘경쟁’이나 ‘성과’라는 이야기가 먼저 붙는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잘 안 되는 장면도 있다.




AI 글쓰기 강의는 잘 팔린다.

AI로 업무 문서를 만드는 법을 배우고, 블로그 글 쓰는 법도 배우고, 프롬프트를 공부한다. 각종 기관에서도 AI 활용 교육을 한다.

다들 AI를 잘 써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문학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갑자기 분위기가 엄숙해진다.

“문학은 그러면 안 되지.”

여기서 나는 조금 헷갈린다.

정말 AI가 인간의 글쓰기를 망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기준이 단순했으면 좋겠다.

AI 글쓰기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맞춤법도 맡기지 않고, 문장도 물어보지 않고, 아이디어도 얻지 않고, 프롬프트 강의도 듣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글에서는 AI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면 적어도 일관성은 있다.

그런데 자신은 AI를 배우면서 다른 사람이 AI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면 그건 문학이 아니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이상해진다.

그럼 어디까지 괜찮은 걸까.

맞춤법은 괜찮나.

문장을 자연스럽게 고쳐달라고 하는 건?

제목을 추천받는 건?

캐릭터 아이디어는?

줄거리는?

한 문장은?

한 문단은?

이렇게 하나씩 들어가다 보면 처음에는 너무 간단해 보였던 기준이 갑자기 흐려진다.

나는 그래서 요즘 AI 논쟁을 보면서 기술보다 사람 마음이 더 재미있다.




문학에는 원래 조금 특별한 통과의례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몇 년씩 원고를 쓴다. 투고했다가 떨어지고 또 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고 겨우 바카라 한 권을 낸다.

그 과정은 대단하다.

7년 동안 썼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솔직히 감탄한다.

와.

진짜 오래 버텼네.

그런데 거기서 자꾸 한 문장이 더 붙는다.

“그래야 진짜 작가지.”

나는 여기서 조금 생각이 달라진다.

그 사람이 7년 고생한 것과 다음 사람도 반드시 7년 고생해야 한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 아닌가.

먼 길을 걸어서 갔던 사람의 노력은 존중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다음 사람에게 자동차 타면 반칙이라고 할 수는 없다.

새로운 도구는 원래 이전 사람이 치렀던 비용을 줄인다.

계산기가 그랬고 컴퓨터가 그랬고 인터넷이 그랬다.

그리고 처음에는 늘 말이 많았다.

“그렇게 하면 실력이 안 늘어.”

“그건 제대로 하는 게 아니야.”

“옛날 방식이 진짜지.”

그런데 어느 순간 모두가 쓰기 시작한다.

그러면 참 신기하게도 예전에 화를 내던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슬롯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비슷한 것 같다.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한다.

절대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 실제로 쓰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작은 예외가 생긴다.

그다음에는 조건이 붙는다.

“이 경우라면 괜찮다.”

“여기까지만 쓰면 된다.”

“사용 사실을 밝히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씩 안쪽으로 들어온다.

처음에는 존재 자체를 막으려던 것이 어느 순간 사용 범위를 논하는 문제가 되어 있다.

이 변화가 재미있다.

“AI를 써도 되는가?”

라고 싸우던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AI를 어디까지 썼는가?”

라고 묻기 시작한다.

질문이 이렇게 바뀌었다면 사실 이미 상당 부분 들어온 것이다.

나는 그래서 새로운 기술을 볼 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처음부터 강하게 밀어내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한번 틈을 주기 시작하면 결국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전히 자리를 잡고 나면 또 익숙한 말이 나온다.

“아, 나도 그때 해볼걸.”

사람 마음이 참 묘하다.

남들이 할 때는 별것 아닌 것 같고, 이상해 보이고, 심지어 반칙처럼 보인다.

그런데 누군가 그걸 가지고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 조금 배가 아프다.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제도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그제야 생각이 바뀐다.

“뭐,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잘 활용하는 것도 능력이지.”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

참 편리한 말이다.

물론 모든 새로운 기술이 좋은 방향으로 정착하는 것은 아니다. 없어지는 것도 있고 문제가 커져서 규제가 생기는 것도 있다.

AI 역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문학에서 어디까지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이미 보인다.

사람들이 AI를 바라보는 기준이 처음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조건 안 된다는 주장 옆에서는 이미 AI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고, 한쪽에서는 AI를 활용한 새로운 창작을 이야기한다.

제도도 조금씩 인간의 개입 정도와 사용 방식에 따라 구분하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의 감정은 아직 거기까지 못 따라가는 경우가 있다.

AI냐 인간이냐.

진짜냐 가짜냐.

노력이냐 반칙이냐.

두 칸 중 하나에 집어넣고 싶어 한다.

현실은 이미 그 사이에 수십 개의 칸이 생기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지금 AI를 활용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해보고 있다.

그래서 이런 변화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날은 새로운 도구를 먼저 써본다는 게 재미있고, 어떤 날은 괜히 공개했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기도 하다.

그래도 계속해보려고 한다.

지금은 아직 사람들이 싸우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맞는지 아무도 확실히 모르고, 기준도 계속 바뀐다.

어쩌면 이런 때 직접 해본 사람만 나중에 알게 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무엇이 실제로 쓸 만했는지.

사람들이 무엇을 오해했는지.

그리고 어떤 기준이 결국 살아남았는지.

시간이 조금 더 지나 AI가 지금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처럼 별로 특별하지 않은 도구가 되는 날이 올진 모르겠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그때 사람들은 지금의 논쟁을 어떻게 볼까.

아마 누군가는 아주 자연스럽게 AI를 쓰면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 정도는 그냥 도구잖아.”

그 말을 들으면 나는 피식 웃을 것 같다.

그래.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지.

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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