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문학을 못 쓴다고?

문제는 AI보다 인간일지도 모른다

by일현 조성훈
《발끝명부》 및 《AI로 장편소설 만들기》 저자 일현 조성훈 프로필 이미지




요즘 AI로 소설을 쓴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꼭 비슷한 말이 따라붙는다.


문장은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어도 인간의 감정까지는 알 수 없다거나, 사람 특유의 문체와 삶의 결을 따라오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이야기다.


나도 처음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AI와 소설을 써보면 황당한 일이 꽤 자주 생기니까.

나도 AI를 활용해서 장편소설을 만들었다. 한 편 쓰고 끝난 것도 아니고 어느새 다섯 편까지 갔다. 처음에는 꽤 쉬워 보였다.


세계관을 설명하고 인물을 만들어주고 어떤 장면이 필요한지 이야기하면 제법 그럴듯하게 써준다. 가끔은 읽다가 ‘어라, 이건 내가 생각한 것보다 괜찮은데?’ 싶기도 했다.

그런데 오래 못 갔다.

문장은 멀쩡한데 사람이 이상했다. 딸이 아버지에게 갑자기 반말을 하고, 조금 전까지 모르던 사실을 다음 장면에서는 너무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다.


엄마라고 해야 할 사람이 엉뚱한 호칭을 쓰기도 했다. 슬픈 장면은 또 왜 그렇게 슬픈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려고 한다, 눈물이 어떻고 가슴이 어떻고 세상이 무너지고….

읽다가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나왔다.

“그만 좀 해. 슬픈 건 내가 알아서 느낄게.”

앜 ㅋㅋㅋ.

그때만 해도 나 역시 단순하게 생각했다. 역시 AI는 사람 감정을 모르는구나. 그런데 한 편 쓰고, 또 한 편 쓰고, 계속 부딪치다 보니 조금 묘해졌다. 정말 감정을 몰라서 이런 걸까?

AI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누군가를 기다리다 밤새 휴대전화를 들여다본 적도 없고, 부모님 장례를 치른 적도 없을 것이다.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뭘 사드릴까 고민해 본 기억도 없겠지. 그런데 우리가 쓰는 글에는 그런 이야기가 넘쳐난다. 사랑해서 했던 말도 있고, 화가 나서 끝내하지 않은 말도 있다.


누군가 떠난 뒤에도 습관처럼 밥그릇을 하나 더 꺼내는 사람도 오래전부터 소설 속에 있었다.

인간은 자기 희로애락을 참 오래도 글로 남겨왔다.

그렇다면 AI가 슬픔을 실제로 느끼느냐는 질문과, 독자가 슬픔을 느끼는 문장을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은 조금 다른 게 아닐까 싶었다.


적어도 내가 장편을 만들면서 겪은 문제는 AI가 감정을 전혀 표현하지 못해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감정은 잘 만든다. 너무 잘 만들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문장이 예쁘다. 읽으면 제법 찡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사람이 여기서 왜 이런 말을 하지 싶은 순간이 있다.


멋진 대사인데 두 사람의 관계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이고, 감동적인 장면인데 그 감정이 나오기까지 앞에서 쌓인 게 없다.

이런 게 더 골치 아팠다.

대놓고 이상하면 바로 지우면 된다. 그런데 그럴듯하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문법도 맞고 감정도 있고, 얼핏 보면 꽤 잘 쓴 것처럼 보인다. 나중에 앞뒤를 다시 읽다가 ‘잠깐만’ 하고 멈추게 된다.

그래서 나는 AI의 엉터리보다 그럴듯하게 틀린 것이 더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건 결국 사람이 잡아야 했다. 지금 이 인물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둘의 관계에서 이런 말투가 가능한지, 방금 나온 감정이 앞의 사건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는지 다시 봐야 한다.


고쳐달라고 하면 끝나는 것도 아니다. 하나를 고쳤더니 옆에서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말투를 자연스럽게 바꿨더니 관계가 이상해지고, 설명을 줄였더니 이번에는 필요한 내용까지 같이 날아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AI가 “수정했습니다”, “최종본입니다”라고 해도 별 감흥이 없어졌다.

그래, 네 말은 알겠고.

내가 다시 볼게.

이쯤 되니까 AI로 글을 쓴다는 게 단순히 잘 써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계속 고르는 일이었다.


살릴 건 살리고, 아닌 건 버리고, 아깝지만 이 인물과 맞지 않으면 지워야 한다. 다시 써야 할 부분은 다시 쓰고, 괜히 들어간 건 아예 없애기도 한다.

AI가 백 가지 가능성을 내놓는다고 해도 그 백 가지를 작품에 다 집어넣을 수는 없다. 예쁜 문장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감동적이라고 다 필요한 장면도 아니다.


작품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판단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AI 활용에서 제일 중요한 능력이 좋은 프롬프트를 만드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잘 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AI가 틀려도 모른다. 아주 자연스럽게 틀리면 더 모른다.

요즘 AI 문학 이야기를 보다 보면 앞으로 몇 년이면 인간 문학을 따라잡을 것이다, 아직 몇 년은 더 걸릴 것이다 같은 전망을 자주 본다. 누군가는 금방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꽤 오래 걸릴 거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요즘은 질문을 반대로 해보게 된다.

AI가 인간 문학을 따라오는 데 필요한 시간이 아니라, 인간이 AI를 문학의 도구로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시간은 아닐까.

새로운 도구가 나왔다고 사람들이 바로 잘 쓰게 되는 건 아니었다. 카메라가 생겼다고 모두가 사진가가 된 것도 아니고, 좋은 붓을 샀다고 그림이 갑자기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했다고 소설가가 저절로 생기지도 않았다.

AI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는 한 번 눌러보고 “에이, 별거 없네”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처음 나온 문장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읽다가 한 문장에서 멈춘다.

‘잠깐. 이건 아닌데.’

같은 AI를 쓰는데 결과가 달라지는 건 아마 그 지점부터일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AI가 얼마나 잘 쓰는지가 궁금했다. 다섯 편을 만들고 나니 이제는 그 사람이 AI가 내놓은 것 중 무엇을 알아보고, 무엇을 버리고, 어디까지 바카라임질 수 있는지가 더 궁금하다.


결국 바카라 표지에 이름을 올리는 건 사람이고, 출간 버튼을 누르는 것도 사람이다. 독자가 돈을 내고 읽게 되는 건 AI가 처음 뱉어놓은 문장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누군가 골라 남긴 결과물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한동안은 “AI가 소설을 쓸 수 있나요?”, “AI가 사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나요?” 같은 질문이 계속 나올 것 같다.

그런데 언젠가는 질문이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AI가 뭘 할 수 있느냐보다 내가 이걸 가지고 뭘 할 수 있느냐.

나는 그 질문이 더 재미있다.

AI는 생각보다 많은 걸 해준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고도 많이 친다. 그건 다섯 편 만들면서 충분히 겪었다.

앜 ㅋㅋㅋ.

그래서 아직은 사람이 필요하다. AI가 모자라서만은 아니다.

마지막에 이건 남기고, 이건 버리자고 결정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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