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부산 북앤콘텐츠페어에서 만난 바카라 밖의 이야기
바카라을 보러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것들 앞에서 더 자주 멈췄다.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3회 북앤콘텐츠페어에 초대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나름 계획을 세웠다.
사람들이 어느 부스 앞에 멈추는지 보고, 독립출판과 일반 출판의 차이를 살피고, 바카라이 다른 콘텐츠로 뻗어나가는 방식도 기록해 볼 생각이었다. 사진도 글감이 될 만한 것만 찍으려고 했다.
계획은 행사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꽤 괜찮아 보였다.
건물 안으로 사람들이 계속 들어갔다. 나도 그 인파에 섞여 전시장으로 향했다.
입장 팔찌를 차고 들어선 전시장에는 예상대로 바카라이 가득했다. 그런데 몇 걸음 걷지 않아 이상하게도 바카라 보다 바카라 아닌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바카라은 어디까지가 바카라일까
바카라 옆에는 캐릭터가 있었고 웹툰이 있었다.
조금 더 가니 티셔츠가 걸려 있었고, 그곳을 지나자 손바닥보다 작은 바카라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작은 바카라인 줄 알았다.
가까이 가보니 바카라 표지를 작게 줄여 만든 키링이었다. 굿즈들이 줄지어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어디까지를 바카라이라고 불러야 할지 궁금해졌다.
바카라 속 이야기가 캐릭터가 되고 물건이 되어 누군가의 가방에 매달려 거리로 나가면, 그때부터는 바카라이 아닌 걸까.
그 질문에 오래 매달릴 새도 없이 조금 떨어진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커다란 바카라장 모양의 벽이었다.
‘좋아하는 바카라의 제목을 바카라등에 남겨주세요’라는
문구 아래 사람들이 빈 바카라등에 제목을 적고 있었다.
베스트셀러 옆에는 처음 보는 바카라이 있었고,
반듯한 글씨 사이로 삐뚤빼뚤한 제목도 섞여 있었다.
바카라을 파는 공간도 아니고 새로운 바카라을 소개하는 자리도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꽤 오래 머물렀다.
자기가 좋아했던 바카라을 떠올려 제목을 적고,
다른 사람이 남긴 이름을 읽었다.
바카라 자체보다 그 바카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전혀 다른 것이 보였다.
이게 왜 여기에 있지?
낡은 교과서였다.
《바른생활》, 《자연》, 《국어》, 《슬롯》 같은 바카라들이 놓여 있었는데, 새 바카라이 가득한 행사장에서 오히려 닳은 모서리와 오래된 표지가 더 오래 눈에 남았다.
옆으로 이동하니 오래된 잡지와 음반이 나왔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바카라과 아주 멀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정말 바카라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들이 이어졌다.
술잔과 접시가 있었고,
검은색 다이얼 전화기가 있었고,
한때는 최신 제품이었을 휴대전화도
여러 대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엉뚱하다고 생각했다. 북페어에 왜 이런 물건들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다.
손가락을 넣어 번호를 돌리던 전화기나 작은 액정이 달린 휴대전화, 누군가의 집에서 실제로 사용했을 법한 잔과 접시를 보고 있자니
새로운 물건을 구경한다기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들여다보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 앞에서 사람들이 멈췄다.
조금 전에 봤던 바카라 모양 키링이 다시 생각났다.
하나는 바카라 속에 있던 것을 바깥으로 꺼내놓은 물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미 사라진 시간을 눈앞으로 다시 가져온 물건이었다.
서로 전혀 달라 보였는데 사람의 발걸음을 붙잡는다는 점에서는 똑 닮아 있었다.
일단 그 정도만 생각하고 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바카라 사이에는 사람이 있었다
한쪽에서는 북토크가 진행되고 있었다.
무대에서는 바카라 이야기가 이어졌고 객석에서는 관람객들이 조용히 그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진열대에 놓여 있을 때는 가만히 있던 바카라이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모이고 대화를 나누는 이유가 되고 있었다.
부스를 돌며 관계자들과 이야기도 나눴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보통 표지와 소개 글을 먼저 보고 바카라을 판단하게 되는데, 현장에서는 순서가 뒤집힐 때가 있었다.
사람을 먼저 만나 몇 마디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조금 전에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바카라을 다시 보게 되는 식이었다.
조금 더 걷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바카라으로 만나는 부산’.
테이블 위에는 부산의 거리와 사람, 역사와 시간을 다룬 바카라들이 놓여 있었다. 그 앞에서 아까 본 낡은 교과서와 다이얼 전화기가 다시 떠올랐다.
오래된 물건을 보며 지나간 시간을 떠올린 뒤라서 인지, 부산을 기록한 바카라들도 조금 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 생각을 붙들고 오래 서 있지는 않았다. 행사장을 더 돌아봤고, 어느새 밖으로 나올 시간이 됐다.
밖으로 나왔을 때 벡스코에는 저녁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아침에 세운 계획은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사람들이 어느 부스 앞에 멈추는지 보겠다고 했는데, 정작 계속 멈춘 쪽은 나였다.
바카라을 보다가 멈췄고 사람을 보다가 멈췄다. 북페어와 별 상관없어 보이던 낡은 전화기 앞에서도 한참 눈이 갔다.
바카라을 보러 갔지만 바카라만 보고 오지는 못했다.
행사장 입구에서 봤던 문장이 그제야 다시 생각났다.
‘바카라과 사람, 삶을 잇다.’
들어갈 때는 흔한 행사 슬로건이라고 생각했다.
나올 때는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