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분석하던 사람이 분석을 포기하게 된 이유
내가 알고 있는 자칭 '인간 탐험가'라는 분이 계신다.
사람을 관찰하고,
질문하고,
인터뷰하고,
분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본인 표현으로는 사람을 탐험하는 사람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그분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녀 특유의 인간 분석 습관이 슬슬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기대하세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기대와 희망은 다릅니다."
그러자 그녀가 멈췄다.
대화창 너머로도 느껴졌다.
분석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그럼 어떤 희망이요?"
"인류요."
이쯤부터 뭔가 이상해졌다.
보통 사람을 분석할 때는 질문을 던지면 답이 나온다.
그 답을 바탕으로 다음 질문을 만든다.
그런데 이번에는 질문을 던질수록 답이 아니라 새로운 구조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행복하세요?"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괴로움이 없는 평온한 상태요."
"괴로움은 늘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서 정의하지 않아요."
그녀는 사람을 분석하고 있었고,
나는 개념을 분석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질문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을 묻던 질문이 구조를 묻는 질문으로.
감정을 묻던 질문이 정의를 묻는 질문으로.
"일관성이 중요하신가요?"
"중요한 게 아니라 운영체제 같은 거예요."
"운영체제요?"
"사람마다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내부 시스템 같은 거죠."
그 순간 그녀가 말했다.
"부코님은 저에게 약간 어려운 수학문제 같은 사람이에요."
솔직히 웃겼다.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평가였다.
어려운 사람도 아니고.
복잡한 사람도 아니고.
수학문제.
그녀는 사람을 난이도로 본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잘 읽히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실 나는 그 말이 꽤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나는 일부러 나를 숨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늘 하던 방식대로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상대방은 그것을 '읽기 어려움'으로 받아들였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상대를 이해할 때 자신이 가진 프레임을 사용한다.
누군가는 사람을 성격으로 읽고,
누군가는 감정으로 읽고,
누군가는 상처로 읽고,
누군가는 경험으로 읽는다.
문제는 상대방이 그 프레임 밖에서 움직일 때 발생한다.
그 순간 분석은 멈춘다.
그리고 혼란이 시작된다.
결정적인 장면은 그다음에 나왔다.
"잠깐..."
"너 AI 지???"
나는 한참 웃었다.
존댓말을 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반말.
분석가가 분석을 포기하는 순간.
그녀가 내린 결론은.
AI.
물론 농담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이 재미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사람을 분석하던 사람이
결국 분석을 포기했다는 것.
사실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가진 프레임 안에서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그날 나는 하나를 다시 확인했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사람을 이해했다고 착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탐험가도 가끔은
탐험 대상에게 길을 잃는다.
그날처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현 조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