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경쟁하지 않는 행복을 위한 노력, 제자리로 돌아온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긍정할 줄 아는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 - 최인철, <굿 라이프> 중에서
나를 갉아먹는 생각 중 하나는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을까'이다. 그 정도라는 것을 누가 정한단 말인가. 세상의 잣대,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한 나라서 저 생각의 늪에 빠져버리면 답이 없다. 끝없이 나를 비난하고, 괴롭힌다. 왜 나는 그 '정도'에 맞추지도 못하고 사냐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느라 바쁘다. 알아차리고, 멈추지 않으면 몸이 아플 때도 있으니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오늘의 비움 대상은 '화장품'이다. 새벽에 일어나 화장대 서랍을 다 열어젖혔더니 한 두 번 쓰다 방치한 화장품이 한가득이다. 특히, 주름을 개선하고 피부톤을 환하게 만들어준다는 기능성 기초 제품들이 많다. 어차피 출근할 때 색조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으므로, 메이크업 제품은 많지 않다. 대신 그 이름도 다양한 제품들이 내 관심 밖에서 잠들어 있다.
아이크림, 수분크림, 영양크림, 미백에센스, 비타민C세럼, 진정팩까지. 매일 꺼내 쓰지도 못한다. 겁쟁이라 고가의 기능성 제품은 사지도 못한다. 너무 비싼 크림을 발랐는데도, 달라지는 게 없으면 또다시 자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화장품을 사 모을 거였다면, 차라리 피부과에 가는 게 나을 뻔했다. 내 나이 정도 되면 정기적으로 피부과에 가서 시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보톡스도 맞고, 레이저 시술도 받아서 피부 노화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다 맞는 말인데, 피부과에 갈 시간이 아까웠다.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일을 하지 싶었다. 물론, 너무나 무지하고 오만한 생각이었다. 꾸준히 늘어만 가는 얼굴의 주름과 잡티를 못 본 척하고 싶었다. 이러다 갑자기 할머니가 되면 어쩌나, 걱정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피부과 대신 SNS에 광고하는 주름예방크림을 샀다. 이 정도면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것이라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무소유의 삶은 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삶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소유 리스트를 늘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 이력서를 빼곡하게 채워나가는 사람이다. - 최인철, <굿 라이프> 중에서
늙는 게 무섭다고 화장품만 사들이고 쌓아두었던 나를 용서한다. 나의 불안함은 화장품 쇼핑하는 순간, 조금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버리겠다며 꺼내 모아둔 화장품에 용서를 구하고, 내용물을 깨끗하게 비운 뒤 분리수거함으로 떠나보냈다. 물건을 비울 때에도 정성을 다하고 싶다. 앞으로는 물건을 살 때에도 더 정성을 다해야겠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것은 못할 짓이다. 내게 꼭 필요한 것을 '어렵게' 사고, 애정을 갖고 사용한 뒤 기한이 지나면 이별해야 하는 게 순리이다. 물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화장품에도 사용기한이 있다. 내 인생에도 마감 기한이 있다. 모든 것들이 영원하지 않다. 언젠가, 이 정도는...이라는 기준을 처음부터 만들지 말자. 좋은 것은 지금 느끼고, 지금 써보며 누리자.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으므로. 더 이상 나의 불안함을 물건에 투영시키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너무 오래된 색조 화장품은 미련 없이 비우자. 특히, 립스틱이나 아이섀도처럼 피부에 직접 닿는 제품들은 깨끗하게 관리하자. 화장품은 나를 빛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니 정성을 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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