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성격은 참 입체적이란 생각을 한다.
딱히 거창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주위 친구들을 보며 느낀 소감이다.
가까운 사이 중에는
내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한 형태로 지닌 친구가 있다.
반대로 내가 가진 단점을
극대화한 형태로 지닌 친구도 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지켜본 바로는,
장점이 꼭 장점으로만 작용하는 것도 아니고
단점이 꼭 단점으로만 작용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나 자신에 대한 평가보다는
남에 대한 평가가 쉬운 법이다.
특히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그 성향을 훨씬 강하게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가진 성향이 어디까지 가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조금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나보다 훨씬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대체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려 하고,
웬만한 일은 좋게좋게 바라보려고 한다.
분명 좋은 성향이다.
그런데 그 긍정성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때로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을 좋게 말하려다 보니
정작 제대로 들여다봐야 할 문제까지
좋게좋게 덮어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본인에게든 타인에게든
결국 피상적인 위로만 남는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기보다는,
그저 괜찮다고 말하는 데 그치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친구 중에는
나보다 훨씬 신중하고 세심한 성향이 있다.
무언가를 결정하기 전에
여러 가능성을 먼저 살피고,
쉽게 행동하지 않는다.
역시 좋은 성향이다.
하지만 신중함이 지나치면
행동보다 불안과 걱정이 앞서게 된다.
무언가를 해보기 전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부터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행동력은 떨어지고,
하나마나한 말로 희망을 곱씹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까지 축축 처지거나 함께 불안해지는 일이 잦다.
어느 순간부터는 괜히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 만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게 되기도 한다.
성격의 한 부분이
관계의 방식까지 바꾸는 것이다.
이런 모습들을 곁에서 오래 지켜보다 보니,
사람의 성격을 단순히 장점과 단점으로 나누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구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인 성향도 지나치면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가 될 수 있고,
신중한 성향도 지나치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우리가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성향도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모습으로 발현될 수 있다.
조금 예민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작은 변화를 빨리 알아차릴 수 있고,
조금 의심이 많은 사람은
남들이 지나치는 위험을 먼저 발견할 수도 있다.
조금 고집스러운 사람은 쉽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는 끝까지 자신의 것을 지켜내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결국 장점과 단점을 가르는 경계는
생각보다 모호한 것 같다.
어떤 성향이든 극단으로 가면 문제가 될 수 있고,
적절하게 다듬어진다면 장점으로 쓰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단점을 가지고 있는지만큼이나
그 성향이 어떤 방향으로 자라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어쩌면 사람에게 주어진 성격은
씨앗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장점의 씨앗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고,
단점의 씨앗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다.
결국 중요한 건
어떤 씨앗을 가지고 태어났느냐보다,
그 씨앗에 어떻게 물을 주고,
어떤 방향으로 길러서,
어떤 열매를 맺게 하느냐가 아닐까.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 역시 내가 가진 성향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가끔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