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성세대'에 가까워져 있다.
만나면 허구한 날 오락, 여자, 여자친구, 여자연예인, 옆 테이블 여자 이야기만 하던 친구놈들도 이제는 부동산이며 육아 이야기에 여념이 없다. 뉴스 속 청년 세대가 더는 우리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고, 열정보다는 안정을, 도전보다는 안전을 우선하게 된 것이다.
가만 보면 우리 또래의 대화 주제는 어릴 때와 비교하면 그 범위가 많이 좁아졌다. 일단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아무리 친한 사이에도 하는 게 아니라니 다들 삼가는 분위기이고, 실없는 농담 따먹기도 제법 줄었다. 저마다 가정이 있는 입장에서 자주 만나기도 힘들뿐더러, 모처럼 만났는데 너무 거창한 이야기도, 반대로 너무 시답잖은 이야기도 어느 쪽이든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이렇듯 소위 기성세대, 그중에서도 남자들의 대화 주제가 좁아진 데에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30대를 거쳐오며 내가 느낀 바에 따르면, 서로를 위해 피하게 되는 이야기가 하나둘 쌓였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안전한' 화제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평범한 사는 이야기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 앞에서 성과급 인상 요구를 섣불리 비판하기 힘들고, 학교 선생님 앞에서 공교육의 붕괴를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집값 상승에 목매는 녀석 앞에서 부동산 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없고, 주식이며 기름값에 민감한 친구 앞에 물가 상승의 괴로움을 토로해 봤자다. 모르긴 몰라도, 우후죽순 자영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진 친구도 카페 사장인 내 앞에서는 선뜻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우리의 대화는 다 같이 잘 사는 길, 모두가 돈 잘 버는 행운을 기원하며 끝을 맺곤 한다. 그 사이에 괜한 개혁적인 시각이나 비판, 냉소가 자리할 틈은 좀처럼 없다. 누구를 배려해서 시작된 침묵인지는 몰라도, 그런 침묵이 반복될수록 슬롯를 이야기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남는 것은 결국 각자의 삶을 무사히 지켜내는 이야기뿐이다.
이제야 비로소 회사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한 온라인 게임인에게 정년 보장이나 주 4일 근무 추진은 더 이상 반대할 이유가 없어졌다. 한두 번 상급지로 갈아타 안심할 만한 부동산 자산을 마련한 애아빠에게 청년 세대의 내 집 마련은 이미 남의 이야기다. 결국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현실에는 공감하면서도, 다른 누군가의 현실에서는 조금씩 멀어져 간다.
남 얘기하듯 말하지만 나 자신도 돌아보면 이제 더 무엇을 갈아엎기보다는 지켜내는 게 중요해졌다. 내 가게, 내 가족, 내 아내, 이제 곧 내 아이…. 남과 비교해 가진 게 많냐 적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굳이 다퉈 쟁취할 것보다 그저 안전하게 유지하고 지켜내고 싶은 목록이 많아질수록 흔히들 '보수적'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이건 결코 정치적인 스탠스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이자 성향의 문제다.
친구들과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래서 문득 기득권의 탄생을 떠올렸다. 그동안 '기득권'이라 하면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세력을 떠올렸는데, 어쩌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을 살아가며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이해관계가 하나둘 쌓여 슬롯 곳곳을 채우면, 그것이 결국 하나의 기득권이 되는 것은 아닐까. 누구도 의식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기성세대가 자기 삶을 지키는 데에만 몰두한다면 슬롯 역시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굴러가게 된다. 딱히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과의 대화를 떠올리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 역시 지키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내 삶의 울타리 안으로만 좁아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기성세대의 초입에서, 그 마음만은 오래 잃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