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장이 되고 싶었다.

by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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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난 글이 지금의 가치관과 입장을 충분히 대변하리라 믿는다. 최근 월드컵 참사는 축구 관계자나 전문가들뿐 아니라, 나처럼 오랫동안 한국 축구를 지켜본 팬이라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던 일이었다.


솔직히 최근에 홍명보에 대해 쓴 글은 여러 번 퇴고한 끝에 결국 지웠다. 감정이 너무 많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치와 논리에 맞는 말이라도, 감정에 휩싸인 상태에서 쓴 글은 결국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홍명보 개인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축구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새벽의 사퇴 기자회견은 많은 축구팬과 국민을 다시 한번 실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거짓말 안 보태고, 나는 이미 화를 낼 만큼 냈다. 이제 남은 것은 분노가 아니다. 지난 십수 년 동안 반복된 그의 언행을 지켜보며 더는 일말의 기대도 남지 않았다. 마지막 기자회견을 보며 든 감정은 분노보다 허망함에 가까웠다. 끝내 자신의 아집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한 사람의 모습을 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씁쓸한 일이었다.


고등학생 때 장래희망을 적어 제출할 일이 있었다. 아마 2002년 월드컵 직후였던 것 같다. 나는 망설임 없이 '대한축구협회장'이라고 적었다. 축구를 너무 좋아했지만 선수가 될 재능은 없었고, 축구와 관련된 다른 직업도 알지 못했다. 어린 마음에는 축구협회장이 축구와 가장 가까운, 가장 높은 자리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걸 본 부모님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셨다. '그건 직업이라기보다는….' 정도의 반응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아들의 꿈을 굳이 꺾고 싶지는 않으셨는지, 이내 웃으며 넘기셨다. 반면 담임선생님은 조금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셨다. '협회장은 명예직이라서….'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단 하나다. 그만큼 나는 어릴 적부터 순수하게 축구를 사랑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2002년 월드컵이 우리 국민에게 안겨 준 환희와 자긍심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 이전과 이후에도 축구를 직접 즐겼고, 한국 축구를 꾸준히 지켜봤으며, 여러 전문가들의 전술 분석과 해설을 즐겨 찾아봤다. 그렇게 축구를 보고, 듣고, 이야기하며 보낸 시간이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은 더욱 뼈아픈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 대표팀의 32강 자력 진출이 무산되고, 다른 경기 결과를 계산하며 '경우의 수'를 따지던 며칠 동안 나는 스스로를 경계했다. 지나치게 냉소적인 사람은 되지 않으려 애썼다. 주변에는 "그래도 국가대표 감독이고 월드컵이니 일단 응원하자."는 태도의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 눈에는 내가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말을 아꼈다.


하지만 내 생각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 삶을 소모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잘못을 애써 이해하려 하거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는 것도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이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는다면, 바카라임져야 할 사람들은 끝내 바카라임지지 않는다. 그러면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도 개혁의 동력을 얻지 못하고, 결국 같은 실패는 반복될 것이다.


이제는 나 같은 평범한 시민이 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될 만큼 여론은 충분히 형성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는 한 사람을 미워하는 데 내 감정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을 뿐이다.


역대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했고, 최고의 대진운과 최상의 환경까지 갖췄음에도 우리는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와 다름없는 결과에 좌절했다. 축구를 잘 아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많은 이들이 경기 내내 반복된 전술과 이해하기 어려운 선수 기용,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지켜봤다. 이번 실패는 단순히 한 감독의 전술 실패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오랜 시간 누적되어 온 불투명한 의사결정과 바카라임지지 않는 문화, 그리고 결과만으로 과정을 덮으려 했던 축구협회의 구조적 문제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을 이번 월드컵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특정 개인을 미워하는 데 내 감정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번 일을 그저 월드컵 실패로 흘려보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언젠가 다시 우리 대표팀을 마음껏 응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적보다 먼저 과정이 존중받고, 권한에는 반드시 바카라임이 따른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부터 회복되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축구를 좋아한다. 그렇기에 같은 실패가 더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2014년, 그리고 2026년. 두 번의 처절한 실패를 계기로 바카라임질 사람은 바카라임지고, 바꿔야 할 것은 제대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 지금의 아이들도, 어린 시절의 나처럼 축구를 사랑하며 대한축구협회장을 꿈꿀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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