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과일은 버려야 한다

by차돌

아침에 아보카도 껍질을 벗겼다. 제법 잘 익어 보이는 하나를 깠는데, 웬걸 속이 다 썩어 있었다. 바로 버리고 다른 걸 집어 깠더니 이번엔 먹기 좋게 익어 있었다. 겉보기엔 똑같은 아보카도였는데, 하나는 통째로 버려야 했고 하나는 가장 맛있을 때였다.


이처럼 과일을 씻거나 깎다 보면 상한 경우가 있다. 전체가 짓물렀거나 썩었다면 미련없이 버리겠지만, 일부분만 그러면 상한 부분만 도려내고 나머지는 살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런 게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곰팡이와 세균이 이미 퍼져 있기 쉬워서라고.


이런 사실을 알고 난 후로는 조금이라도 썩은 부분이 보이면 그냥 전부 버린다. 남은 게 아까워 괜히 배탈 날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다.


날이 더워지며 옷장을 정리했다. 겨우내 입지 않던 옷과, 지난해 넣어 둔 여름옷을 꺼내 보니 한 무더기였다. 몇 년째 입지 않은 옷도 있었고, 낡아서 늘어난 티셔츠도 있었다.

"오빠, 그거 입을 거야?"

아내가 묻는다.

"잘 안 입긴 하는데... 아끼던 거라서."

나는 늘 이런 식이다. 버릴 결심을 잘 못 한다.


아내는 내 손에 들린 옷 몇 벌을 가져가 차곡차곡 개어 현관 앞에 쌓아두었다.

"버릴 건 버려. 몇 년 안 입은 건 앞으로도 안 입어."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혼자 살 때 내 옷장은 늘 지저분했다. 언젠간 입겠지, 아까운데, 추억이 있는 옷인데... 그런 미련들이 옷장을 너저분하게 채우기만 했다.


생각해 보면 인간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정말 가까운 사람은 어떻게든 남는다. 반대로 멀어질 사람은 애써 붙잡아도 결국 멀어지고, 정리된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내게 잘해준 사람에게 더 잘하지 못한 건 아쉽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에게 미련을 두었던 건 하나도 아쉽지 않다. 오히려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채 애매하게 곁에 두며 마음을 소모했던 시간만 더 후회스럽다.


나이를 먹고 보니 주위에서도 관계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친구, 온라인 게임 동료나 상사뿐 아니라 가족 문제로 괴로워하는 이들도 많다. 부모-자식, 형제자매처럼 선택할 수 없는 관계일수록 더 어렵다. 겉보기에는 화목해 보이는 집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다. 너무 가까워서 더 자주, 많이 상처를 주고 받고 쉽게 끊어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조금 냉정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 자신과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나를 계속 소모시키는 관계는 오래 붙들지 않는 게 좋다. 대신 좋은 사람과는 더 자주 연락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주고받으면 삶이 풍요로워진다. 이는 가족과도 마찬가지다.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기 위해 노력하고, 불편한 건 돌려 말하지 않는다. 어떠한 관계든 결국 곪은 상태를 방치하면 썩고 문드러진다.


나는 이제 과일이 썩어 있으면 과감하게 버린다. 아까운 마음보다 건강을 잃는 게 더 큰 손해라는 걸 알고 나서부터다. 사람 관계도 이와 같다. 무언가를 끝내지 못해 오래 붙들고 있는 일이 결국 나 자신을 가장 오래 병들게 하기도 한다.


썩은 과일을 그대로 두면 다른 과일까지 금세 상한다. 그래서 때로는 아까워도 버려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나를 병들게 하는 관계, 오래 붙들고 있는 미련, 고치지 못한 나쁜 습관 같은 것들. 비워내야 새로운 것도 들어온다. 결국 나를 지키는 일은 무엇을 품고 살 것인가보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깨닫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김치~ 말고 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