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의 물의 유희
평소와 비슷한 때에 눈을 떠 지금이 몇 시쯤 됐을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바깥에 햇살이 충분히 들어오지 않는 걸로 봐서는 아직 새벽인가, 그렇다면 나는 오늘따라 왜 일찍 눈이 떠졌을까. 이불속을 헤집다가 고개를 들어 시간을 본다. 이미 해가 떠 있을 시간인데 어둡다니, 아무래도 오늘은 밖에 날씨가 흐린가 보다.
흐리고 비가 많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오늘의 외출 일정을 생각했다. 오래간만에 오는 비소식이 반갑지만 하필 내가 나가는 날이 비 오는 날이라니. 얼른 볼일만 보고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우산을 챙긴다.
비바람 속에서 조심스레 서행하며 도착한 목적지 옆의 풍경은 바닷물이 어느 한쪽을 향해 아주 바쁘게 뛰어가고 있고, 바람은 차체를 흔들어 괜히 나의 손이 핸들을 더욱 꽉 잡게 만들었다. 무언가 펄럭이는 소리를 눈으로 따라가 보면 길가 가로등에 묶인 현수막이 가만있을새 없이 끊임없이 흔들려 도무지 그 내용을 알아볼 수가 없다. 일단 차에서 내려 얼른 일정을 끝내고 와야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까지 거친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라벨의 피아노곡 물의 유희(Jeux d'eau)'가 떠올랐다. 잠시 안전한 곳에 정차를 하고 창 밖으로 여전히 넘실대는 바다를 바라본다. 오늘 같은 날씨는 '쇼팽 피아노 에튀드 Op.25 No.11 겨울바람'같은 곡이 떠오를법한데, 이 거친 날씨 속에서 생각나는 곡이 잔잔하지만 역동적인 물의 유희라니. 내가 이 빗속을 뚫고 찬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차 안에서 따뜻한 라테 한잔과 함께 그저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까.
사실 물의 유희에서의 물은 거대한 파도의 소용돌이라기보다는 분수나 시냇물정도에 가깝다. 하지만 라벨이 악보에 써 놓은 이 곡의 인용구를 보면 힌트가 있다. "강의 신이 자신을 간지럽히는 물줄기 때문에 웃고 있다..." 강의 신은 거대한 자연 그 자체이자 자연의 움직임을 초월해서 내려다보는 존재다. 밖의 몰아치는 비바람과 거친 파도는 누군가에게는 위협일 수 있지만 강의 신에게는 그저 유쾌한 희롱일 뿐이다.
이 곡의 시작은 높은 음역대에서 맑고 투명한 화음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치 분수대에서 물줄기가 햇살을 부시며 솟구쳐 올라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전체적으로 회화적이고 가벼운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어서 나오는 전개부는 내가 바라보고 있는 역동적인 바다와 비슷하다. 음역대가 저음부까지 넓게 닿고 소리가 웅장해진다. 물줄기가 거세지며 마침내 카덴차 부분의 글리산도가 절정에 달하면 비로소 강한 물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재헌부 및 코다에서는 처음의 주제가 풍성해진 채로 다시 돌아온다. 마치 물결이 잦아들고 다시금 평온함을 찾은 듯하다.
아직 남아있는 라테를 한 모금 마시며, 다시 시동을 켠다. 나와 바다 사이는 유리창이라는 뚜렷한 경계가 있다. 이 유리창은 거친 비바람을 차단함으로써 나에게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차가 흔들릴 정도의 바람은 통제불능한 자연의 힘이지만 나는 비가 들치지 않는 안전한 곳에서 그냥 바라보고만 있는, 그저 관조하고 있는 것이다.
폭풍우에 뛰어들면 생존이 우선이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면 파도의 부서지는 모양, 색깔,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낭만주의 음악이 나의 감정을 듬뿍 담아 표현한 것이라면, 인상주의는 그보다 차갑고 고요하다. 나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 찰나의 인상을 포착한 것이다. 그저 변화하는 풍경을 바라보며 빛의 색깔을 읽는다. 이 곡에서 아르페지오와 32분 음표가 넘치게 나와도 결국 소나타형식과 같이 재현되는 테마에 머무는 것처럼, 나의 감정이 아무리 요동치더라도 그것을 담아낼 나만의 중심이 있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폭풍우는 여전히 차창을 때리지만 내 마음은 평온하다. 빛의 색깔을 읽고 찰나의 순간을 느끼는 이 시간이야말로, 변화하는 내 삶 속에서 스스로를 지탱하는 단단한 형식을 확인하는 순간이 아닐까. 오늘의 이 관조가 내 일상 속에 깊고 투명한 물방울이 되어 나에게 톡 튀어와 서서히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