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의 어미거위 모음집 중 잠자는 숲속의 미녀 파반느
하루를 끝내고 노을이 질 때쯤 운전해서 집으로 향하다 문득 어떤 선율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곡이 뭐였지 분명 따스하고 고요하게 시작했던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하며 기억을 더듬다가 롯데콘서트홀에서 메켈레가 이끌었던 파리오케스트라의 라벨 <어미거위 모음집>을 떠올렸다. 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곡은 이 모음집의 첫 번째 곡인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파반느'다. 단순한 선율이 따뜻하게 다가옴을 몸으로 느끼면서 음악과 함께 운전을 이어갔다.
이내 집에 도착해 이 감성이 가라앉기 전에 얼른 총보를 찾았다. 악보를 펼치니 왜 내가 편안함을 느꼈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아련하게 들렸던 플루트의 첫 선율은 예상대로 A-C-E-D-G로 A minor펜타토닉을 기반한 음계이다. 펜타토닉은 5음음계로 '시'와 '파'라는 반음이 없어 동양적이고 원초적인 음들의 조합이다. 펜타토닉은 복잡한 어른의 세계에서 반음계적 갈등을 겪던 나를 단순하고 안전한 어린 시절의 세계인 5음음계로 보내는 그런 음계이다. 우리나라의 동요 중 '섬집아기'와 '나뭇잎 배'를 떠올려보면 역시 펜타토닉으로 이루어져 있고, 포근하지만 어딘가 쓸쓸한 느낌이 이 곡과 비슷하다.
라벨은 첫 음에 플루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사람의 가장 편안한 호흡의 음역대인 'A-C-E'선율을 연주하면서 베이스로는 호른과 비올라가 은근히 스며들어있다. 악보를 보면 sordines, pizz가 보이는데 이것은 각각 약음기를 끼고, 피치카토주법으로 연주하라는 뜻이다. 약음기를 낀 호른과 현을 부드럽게 뜯어내는 비올라가 만나 소리의 배음을 억제하여 날카로운 끝 음을 뭉툭하게 만든다. 마치 안갯속에서 형체만 보이는듯한 소리로 귀의 자극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어서 나오는 첫 장 하프는 음표 위에 동그라미로 하모닉스가 표시되어 있다. 사실 이 소리는 현악기의 부드러운 피치카토와 정교하게 블렌딩되어 있어, 청각적으로는 어느 쪽이 하프인지 명확히 구분해내기란 쉽지 않다. 라벨은 두 악기의 음색적 특징과 잔향을 통합함으로써 개별 악기의 존재감 대신 음색의 광택 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 투명한 잔향은 안개 낀 정원에 별빛처럼 점을 찍으며 보이진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신비로운 입체감을 소리에 부여한다.
이 안개 낀 정원에서 플루트의 숨을 그대로 받아 클라리넷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현악기와 함께 앞서 찾아볼 수 없었던 선법적인 장식과 비화성음 섞며 미묘하게 공기가 바뀐다. 미녀는 마냥 편안하게 잠들어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악보에 'Doux et expressif'(부드럽고 풍부한 표정으로)를 더해 몽롱한 상태에서 감정을 한 방울 떨어뜨린다. 안정적인 펜타토닉에 머물던 화성이 조금 더 복합한 선법적인 선율로 얽히기 시작한다. 내가 느꼈던 따뜻한 펜타토닉이 이제는 안전한 집에서 나와 조금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이러한 미묘한 흔들림도 잠시, 곡은 이내 A-B-A형식을 취하며 펜타토닉으로 다시 돌아온다. 다시 돌아온 플루트는 처음과 같아 보이지만 그 배경이 조금 더 풍부해져 있다. 약음기를 낀 비올라가 이제는 다른 현악기들과 함께 아주 여리게(pp) 화음을 쌓으며 플루트를 더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다시 돌아온 이 목가적인 선율에 하프가 조용히 A음으로 마지막 점을 찍으면 수고한 나에 대한 위로가 완성된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살고 다시 고요한 내면으로 돌아오는 회귀의 과정인 것이다.
드뷔시가 소리의 배음을 수평적으로 섞어 풍부하게 가져갔다면, 라벨의 배음에는 수직적 질서가 있다. 라벨의 소리의 층위(Layering)는 배음들이 각자의 층위에서 깨끗하게 울리도록 설계되었다. 약음기를 낀 현악기가 가장 아래에서 바닥을 채우고, 중간의 호른이 지속음처럼 풍성한 가운데 영역을 메우며, 가장 위에서 하프가 유리알 같은 상위 배음을 별빛처럼 뿌린다.
악기가 많아도 각각의 역할이 분명하고 수직으로 쌓여 있는 층위가 모여 '따로, 또 같이' 들려 내가 첫 음을 명확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크기가 다른 싱잉볼을 차례로 정확한 간격을 두고 하나씩 쳐서 각각의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질서 정연함이 흐트러진 나를 다시 정렬시킨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며 라벨을 떠 올린건 하루를 잘 보낸 나를 다시 조율하고 가다듬으려는 무의식적인 내면의 소리이다. 여기까지 모든 게 명확해진 지금, 이제 편안하게 악보를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