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에게 물렸다

갯바위

by마루

나는 우럭을 잡으러 갔고, 복어에게 물렸다

— 감자공주의 제주 휴가, 성산일출봉 갯바위에서


휴가를 갔다.

제주 성산일출봉.


제주에 사는 지인이 말했다.


“생새우를 바위틈에 넣으면 큰 우럭이 잡혀요.”


나는 낚시를 잘 모른다.

제대로 해본 적도 없다.


어릴 적 시골에서 이것저것 잡으러 다닌 기억은 있지만 이상하게 내 손에는 잘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제주까지 왔는데 한번 해보자 싶었다.


복장은 반바지에 운동화.


낚시 장비라고 부를 만한 것도 별로 없었다.


바다로 내려가기 전 지인이 선크림을 하나 건넸다.


“이거 외국 건데 강도가 세요. 듬뿍 바르세요.”


말 잘 듣는 나는 듬뿍 발랐다.


그런데 이 선크림, 유분이 장난이 아니었다.


건조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팔도 반짝, 다리도 반짝. 햇빛을 받으니 얼굴에서는 광이 났다.


오랜만에 보는 광이었다.


광채라기보다는 거의 **광인(光人)**이었다.


그렇게 온몸을 번쩍거리며 성산일출봉 아래 갯바위로 내려갔다.


그런데 바위가 장난 아니게 미끄러웠다.


나는 물고기보다 운동화가 걱정됐다.


물에 들어갈 장비도 없고 갈아 신을 신발도 없었다. 파도가 오면 피하고, 물이 빠지면 움직였다.


한 발.


또 한 발.


운동화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그런데 파도라는 놈이 참 얄밉다.


여기까지는 안 오겠지 싶은 곳에 서 있으면 한 번 넘실거리고, 두 번 넘실거리다가 꼭 세 번째쯤 슬쩍 더 들어온다.


철썩.


결국 운동화 속으로 바닷물이 들어왔다.


양말까지 젖었다.


양말을 신고 젖은 운동화로 걸어본 사람은 안다.


질퍽, 질퍽.


그 느낌이 정말 별로다.


그렇게 안 젖으려고 버텼는데 결국 젖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고기라도 잡아야 했다.


처음 보는 새우통을 열었다.


냉동에서 이제 막 풀려난 새우들이 흐물흐물하게 잔뜩 들어 있었다. 한 마리를 집어 미끼로 꿰었다.


힘도 없고 흐느적거렸다.


이게 정말 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바닷물에 던졌다.


그런데 웬걸.


바로 입질이 왔다.


낚싯대를 들어 올렸더니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달려 올라왔다.


잡았다.


내가 물고기를 잡았다.


손으로 잡아 미끼를 떼려고 자세히 보니 복어였다.


녀석은 벌써 배를 빵빵하게 부풀리고 있었다. 몸을 딱딱하게 만들며 입으로 똑똑거리는 소리까지 냈다.


그 순간 속에서 묘한 희열이 올라왔다.


‘나도 물고기를 잡을 수 있네?’


그렇다면 다음에는 더 큰 놈을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문제는 뜰채도 없고 잡은 물고기를 담을 통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근처 바위 구멍에 바닷물이 고여 있는 곳을 찾아 복어를 넣어두었다.


녀석은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바위 사이에 숨어버렸다.


그래도 물이 얕으니 나중에 건지면 되겠지 싶었다.


다시 낚싯대를 던졌다.


입질은 계속 있었다.


그런데 잡히지는 않았다.


미끼만 사라졌다.


또 새우를 끼웠다.


던졌다.


또 없어졌다.


다시 끼웠다.


또 없어졌다.


슬슬 이상했다.


내가 지금 낚시를 하는 건가, 물고기 밥을 주는 건가.


새우 반 통이 사라질 무렵에는 물고기들도 나를 알아본 것 같았다.


‘저 사람한테 가면 새우 준다.’


그 사이 파도는 점점 세졌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가 커지자 슬슬 겁이 났다.


이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났다.


내 복어.


그래도 내가 오늘 처음 잡은 물고기 아닌가.


지인들에게 보여줘야 했다.


분명 바위 사이 물웅덩이에 넣어뒀는데 어디였는지 모르겠다.


여기였나?


저기였나?


한참을 들여다보다 얕은 물속에서 등이 하나 보였다.


있었다.


내 복어였다.


손을 집어넣어 녀석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다시 배를 빵빵하게 부풀렸다.


입에서는 또 똑똑거리는 소리가 났다.


“가만있어라.”


한 손에는 낚싯대.


한 손에는 복어.


그리고 젖은 운동화.


그 상태로 미끄러운 갯바위를 걸어 일행 쪽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한 자세였다.


낚싯대로 균형을 잡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빵빵하게 부푼 복어를 들고 미끄러운 바위를 걷고 있었다.


그때였다.


복어가 한 번 더 몸을 부풀렸다.


이놈도 살려고 필사적이었을 것이다.


몸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놓치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줬다.


그리고 녀석이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콱.


손가락을 물었다.


“아!”


진짜 아팠다.


손가락에는 작은 이빨 자국이 났고 피가 맺혔다.


그 순간 별생각이 다 들었다.


‘복어에는 독이 있다는데?’


‘얘한테 물리면 독이 들어오는 거 아니야?’


겁이 덜컥 났다.


결국 손에 힘이 풀렸다.


복어가 떨어졌다.


하필이면 이번에는 제법 깊은 갯바위 물웅덩이였다.


풍덩.


잠깐 고민했다.


다시 잡아?


그런데 손가락에서는 피가 나고 욱신거렸다.


복어는 물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미련이 없어졌다.


그래, 가라.


너도 살고 나도 살자.


손가락에는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남았다.


나는 GPT에게 물었다.


‘복어한테 물리면 어떻게 돼?’


이런저런 위험 이야기가 나왔다.


순간 더 겁이 났다.


‘이걸로 병원까지 가야 하나?’


그런데 생각해보니 조금 전까지 나를 물고 도망간 그놈보다 휴대전화 속의 대답이 나를 더 무섭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일단 지인들에게 돌아갔다.


손가락은 계속 아팠다.


조금 붓고 피도 났다.


그리고 그날 내 낚시는 사실상 끝났다.


그래도 몇 번 더 던져봤다.


역시나 물고기는 잡히지 않았다.


미끼만 계속 사라졌다.


지인들은 옆에서 하나둘 잡아 올리는데 나는 새우만 계속 바다에 헌납했다.


어느새 반 통이 없어졌다.


그제야 확실히 알았다.


나는 오늘 낚시를 온 게 아니었다.


성산일출봉 물고기들 밥 주러 온 것이었다.


큰 우럭을 잡겠다고 내려갔지만 우럭은 구경도 못 했다.


운동화는 젖었고,


양말은 질퍽거렸고,


선크림을 너무 발라 얼굴은 번쩍거렸고,


겨우 잡은 복어 한 마리에게 손가락까지 물렸다.


그리고 그 복어마저 놓쳤다.


남은 것은 빈손과 젖은 운동화, 손가락의 작은 이빨 자국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행이란 게 그런가 보다.


큰 우럭을 잡았다면 사진 한 장 남기고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잡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야기를 하나 가지고 돌아왔다.


성산일출봉 아래에서 처음으로 물고기를 잡았던 순간.


내 손에서 빵빵하게 몸을 부풀리던 작은 복어.


살려고 내 손가락을 콱 물고 결국 바다로 돌아가 버린 녀석.


생각해보면 그날 가장 낚시를 잘한 건 내가 아니었다.


지인들도 아니었다.


파도는 내 운동화를 잡았고,

물고기들은 내 새우 반 통을 잡았고,

복어는 내 손가락을 잡았다.


정작 나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그래도 휴가에서 돌아온 지금까지

그날 이야기는 내가 꽉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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