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야 문을 여는 폭포

폭포

by마루

비가 와야 문을 여는 폭포

비가 열어놓은 문

감자공주, 부안의 숨어 있는 폭포를 찾아서


폭포는 늘 그 자리에 있는 줄 알았다.


산이 있고 계곡이 있으면 물이 흐르고, 사람은 그 물길을 따라가 폭포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안에는 찾아간다고 해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닌 폭포가 있다.


비가 와야 한다.


그것도 제법 많은 비가 내려야 한다.


국립공원공단 변산반도국립공원사무소가 소개한 변산반도의 폭포는 직소폭포를 비롯해 벼락폭포, 수락폭포, 선계폭포가 있다.


직소폭포는 적당한 비에도 물줄기를 볼 수 있지만, 벼락폭포·수락폭포·선계폭포는 조금 다르다.


100㎜ 이상의 비가 내린 뒤 며칠 동안만 모습을 드러내는 이른바 ‘신기루 폭포’다.


내가 관심을 가진 곳은 수락폭포였다.


부안 변산면 도청리, 갑남산과 투봉으로 이어지는 산자락.


산행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수락폭포를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이 나온다.


평소의 사진만 보면 폭포라는 이름이 조금 어색하다.


거대한 암벽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비가 지나간 날, 산의 표정은 달라진다.


능선에는 낮은 구름이 걸리고 바위는 검게 젖는다. 골짜기 여기저기서 모여든 물이 암벽 가장자리까지 밀려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절벽 한가운데로

하얀 선 하나가 내려온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나는 이런 풍경 앞에서 사진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카메라가 좋아도 안 되고, 렌즈가 좋아도 안 된다.


날짜를 정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자연이 먼저 허락해야 한다.


비가 내려야 하고,

산이 충분히 젖어야 하고,

물이 골짜기를 채워야 한다.


그 모든 시간이 맞아떨어진 뒤에야 비로소 셔터를 누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사진은 찾아가서 찍는다기보다 기다렸다가 만나는 사진에 가깝다.


변산반도에는 수락폭포 말고도 이런 폭포가 숨어 있다.


벼락폭포.


선계폭포.


이름은 지도에 남아 있지만 풍경은 늘 그 자리에 있지 않는다.


큰비가 지나간 며칠 동안만 산은 감춰두었던 물길을 꺼내놓는다.


나는 그게 참 사진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흔히 좋은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래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보면 알게 된다.


사람이 만들어낼 수 없는 순간이 훨씬 많다는 것을.


빛 하나도 그렇고,

안개 한 줄도 그렇고,

우연히 지나가는 사람의 뒷모습도 그렇다.


그 순간이 왔을 때 그곳에 있는 것.


어쩌면 사진가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뿐인지도 모른다.


수락폭포도 그렇다.


다음 날 다시 찾아오면 물줄기가 가늘어져 있을 수 있고, 며칠 뒤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암벽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보고 싶고,

그래서 더 찍고 싶어진다.


유명해서가 아니다.


다시 왔을 때는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진은 어쩌면 늘 존재하는 것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붙잡아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부안의 산속에는 오늘도 폭포가 숨어 있다.


나는 그 폭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비가 열어놓은 문이 다시 닫히기 전에 가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셔터를 누른다.


찰칵.


며칠 뒤 물줄기는 사라져도,


그날의 폭포는 사진 속에서 계속 흐른다.

작가의 이전글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