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에 갔다.

한끼

by마루

부안에 갔다.

처음에는 그냥 밥 한 끼 먹으러 들어간 집이었다.

그런데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끔 그런 집이 있다.


음식보다 먼저 사람이 남고,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그 동네가 보이고, 집을 나설 때쯤에는 밥 한 끼가 여행 한 페이지가 되어버리는 곳.


어제 만난 집이 그랬다.


마당 주변에는 유실수가 많았다.


배도 있었고 감도 있었다.


그중 내 눈을 붙잡은 것은 무화과였다.


남쪽 지방을 다니다 보면 볼 수 있는 나무지만, 나는 무화과를 제대로 따서 먹어본 적이 없었다.


주인아저씨가 하나를 따보라고 했다.


손으로 조심스럽게 따는데 꼭지에서 하얀 진액이 묻어나왔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반으로 갈라보니 더 신기했다.


겉모습과 달리 안쪽에는 핑크빛 속살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한입 먹었다.


생각했던 것처럼 설탕 같은 단맛은 아니었다.


은근했다.


달다고 하기에는 담백하고, 그렇다고 아무 맛이 없는 것도 아닌 묘한 맛.


처음 먹어보는 사람에게는 맛보다 그 순간이 먼저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나에게도 그랬다.


무화과 하나를 먹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부안에 왔다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밥상이 차려졌다.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뼈를 발라낸 오리와 닭요리.


맛있는 음식은 많지만 먹는 사람을 생각해서 손이 한 번 더 간 음식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젓가락으로 집어 먹기 편했다.


그런데 이날 내 기억에 유난히 남은 것은 거창한 재료가 아니었다.


볶음밥 위의 통깨였다.


씹는 순간 통깨가 톡톡 터졌다.


순간 날치알이 생각났다.


날치알이 입안에서 톡톡 터지듯 통깨가 고소하게 터졌다.


참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작은 맛이 오래 남는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도 그렇다.


전체 풍경을 찍고 돌아와서 정작 기억나는 것은 구석의 작은 빛 하나일 때가 있다.


음식도 그런 모양이다.


그리고 주인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잠시 후 아저씨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또 한 장.


그리고 또 한 장.


나는 어느 순간 음식보다 그 휴대전화 화면을 더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안에는 아저씨가 살아오면서 바라본 부안이 들어 있었다.


유두봉도 있었고, 용이 무언가를 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솔섬도 있었다.


비가 많이 와야 볼 수 있다는 폭포도 있었다.


유명한 사진작가의 작품집도 아니고 관광 안내소에서 만든 홍보사진도 아니었다.


그냥 한 사람이 자기 동네를 다니며 찍어놓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꼭 보물상자처럼 느껴졌다.


“여기도 한번 가봐요.”


사진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아저씨의 설명이 따라왔다.


좋아하지 않으면 그렇게 많이 찍어둘 수 없다.


오랫동안 바라보지 않았다면 어디에서 무엇이 보이는지도 알 수 없다.


그 휴대전화에는 사진만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자기 동네를 바라본 시간이 들어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 그런지 그런 장면에 마음이 간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산이고 바위이고 비 오는 날의 물줄기일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기다렸다가 찍고 싶은 풍경이 된다.


어쩌면 사진이라는 것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을 찍었느냐보다 왜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느냐가 그 사람을 보여준다.


밥을 먹으러 들어온 집에서 나는 음식 이야기를 듣다가 나무 이야기를 듣고, 나무 이야기를 하다가 부안의 산과 바위와 폭포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 사이 무화과의 하얀 진액은 손끝에 남았고, 처음 본 핑크빛 속살의 맛도 기억에 남았다.


볶음밥에서는 통깨가 톡톡 터졌다.


생각해보면 여행에서 오래 남는 것은 꼭 유명한 풍경만은 아니다.


어떤 집 마당에서 처음 따먹어 본 무화과 하나.


볶음밥 한 숟가락에서 터지던 통깨.


그리고 처음 만난 사람이 휴대전화를 꺼내며


“이것도 한번 봐요.”


하고 보여주던 사진 한 장.


그런 것들이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그래서 이 집을 단순히 맛집이라고만 쓰기에는 조금 아쉽다.


맛있는 음식을 먹은 곳이기도 하지만, 부안을 좋아하는 한 사람을 만난 곳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행은 유명한 곳을 얼마나 많이 보았느냐로 남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낯선 곳에서 무엇 하나를 처음 먹어보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조금 오래 들어보고,


그 사람이 소중하게 간직한 풍경을 함께 바라보는 것.


그렇게 여행자는 잠시 그 동네 사람의 눈을 빌린다.


어제 나는 부안에서 밥 한 끼를 먹었다.


그리고 주인아저씨의 휴대전화 속 작은 보물상자를 함께 열어보았다.


집을 나설 때는 배만 부른 것이 아니었다.


내가 모르던 부안이 조금 더 생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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