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원주를 빠져나와 춘천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길가에 젊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손에는 직접 쓴 종이가 들려 있었다.
히치하이킹.
한국에서는 이제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요즘 같으면 낯선 사람을 차에 태우는 것도, 낯선 사람의 차를 얻어 타는 것도 먼저 걱정부터 든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하지.
그런데 그들을 보는 순간 위험보다 먼저 아주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친구네 집에 모여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야, 너 돈 있냐?”
“없는데.”
“나도 없는데.”
잠시 조용하더니 한 친구가 말했다.
“야, 우리 바다 보고 싶지 않냐?”
“돈도 없는데 어떻게 가.”
“그럼 우리 무전여행 한번 가자.”
그 말 한마디로 우리는 역으로 갔다.
새벽 기차를 탔다. 주머니에는 돌아올 차비조차 변변히 없었다.
기차는 덜컹거리며 어둠을 밀어내고 달렸다.
배가 고팠다.
객차 안으로 삶은 계란을 파는 아저씨가 지나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을 보면서 우리는 말없이 눈만 껌뻑였다.
사 먹을 돈이 없었다.
그래도 웃었다.
돈이 없다는 사실조차 그때는 여행의 한 장면이었다.
친구 하나는 기타를 메고 있었고 누군가는 하모니카를 가지고 있었다. 기차가 덜컹거리면 그 박자에 맞춰 기타를 치고 하모니카를 불었다.
터널에 들어가면 창밖이 갑자기 캄캄해졌다.
오래된 기차 특유의 매캐한 냄새가 났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다시 아침빛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또 웃었다.
어디에서 잘 것인지도 몰랐다. 무엇을 먹을지도 몰랐다. 어떻게 돌아올 것인지도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무섭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돈은 없었지만 젊음이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나 오늘, 원주의 한 도로에서 종이를 흔들고 있는 젊은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그들을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까지 가려는지, 왜 히치하이킹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알 것 같았다.
내가 저 나이였을 때도 저런 얼굴이었겠구나.
돈보다 시간이 많았고, 계획보다 호기심이 컸고, 도착하는 것보다 가는 길이 더 재미있었던 얼굴.
나는 결국 차를 세우지 못하고 그들을 지나쳤다.
안전도 생각했고 사고도 생각했고 혹시 모를 일도 생각했다.
백미러 속에서 그들은 점점 작아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웃음이 났다.
차를 몰고 지나간 사람은 지금의 나였지만, 길가에 서 있던 사람은 오래전의 나였다.
그 시절 우리는 바다를 보기 위해 돈도 없이 기차에 올랐고, 오늘의 젊은이들은 목적지를 향해 낯선 자동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법은 달라도 마음은 비슷했을 것이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누구를 만나게 될까.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생길까.
그때 우리는 몰랐다.
배고팠던 것도, 계란 하나 사 먹지 못했던 것도, 덜컹거리던 기차도, 터널 속 매캐한 냄새도, 기타와 하모니카 소리도 언젠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억이 된다는 것을.
오늘 길가에 서 있던 젊은이들도 아직은 모를 것이다.
몇십 년 뒤 어느 날, 자신보다 훨씬 어린 누군가가 길가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오늘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알게 될 것이다.
무전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어디까지 갔느냐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떠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마음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