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의 푸른 들판을 달리다가 이상한 것을 봤다.

철탑

by마루

김제의 푸른 들판을 달리다가 이상한 것을 봤다.

주황색과 흰색이 번갈아 칠해진 거대한 철탑들이 들판 한가운데 줄지어 서 있었다. 탑과 탑 사이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선이 촘촘하게 걸려 있었다.


차창 밖으로 한참 바라보다가 혼잣말을 했다.


“저게 뭐지? 참새 잡나?”


정말 그물처럼 보였다.


김제평야에 참새가 아무리 많아도 그렇지. 저 정도면 참새가 아니라 구름이라도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송전탑 같기도 했고, 무슨 군사시설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전기를 보내는 송전탑과는 생김새도 달랐고, 철탑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나는 이상한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사진부터 찍었다.


그리고 찾아봤다.


KBS 김제송신소.


내가 참새 그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단파방송을 멀리 보내기 위한 거대한 안테나 시설이었다.


여기까지는 그저 재미있는 발견이었다.


그런데 단파가 어떻게 먼 나라까지 가는지를 찾아보다가 손가락이 멈췄다.


전리층.


지구의 높은 대기에는 태양의 복사에 의해 기체가 이온화된 영역이 있다. 특정 주파수의 단파는 이 영역의 영향을 받아 다시 지상 쪽으로 돌아오고, 이런 방식으로 아주 먼 거리까지 전달될 수 있다.


인공위성이 없던 시절에도 사람의 목소리가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넘어갔다.


그런데 인간이 그 길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하늘에 무엇을 설치하기 전에 먼저 하늘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지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성질 하나를 찾아냈다.


길은 이미 있었다.


그 문장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우리는 과학이라고 하면 자꾸 무엇을 만드는 장면부터 떠올린다.


더 빠른 컴퓨터를 만들고, 더 큰 로켓을 만들고, 더 많은 위성을 띄운다. 이제는 수많은 연산장치가 인간의 질문에 몇 초 만에 답하는 시대다.


그런데 오래된 과학을 들여다보면 가끔 방향이 반대다.


무엇을 만들기 전에 먼저 바라본다.


바람이 어디로 부는지.


물이 어디로 흐르는지.


빛이 어떻게 꺾이는지.


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자연이 이미 만들어 놓은 길을 발견한다.


그 생각을 하다가 문득 보이저 1호가 떠올랐다.


1977년 지구를 떠난 작은 탐사선.


지금은 태양권을 벗어나 성간 공간을 항해하고 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그 안에 실린 컴퓨터와 통신장치는 놀랄 만큼 소박하다. 지구를 향해 보내는 무선 신호의 송신 전력도 약 20와트 수준이다.


그 작은 기계가 그토록 먼 곳까지 갈 수 있었던 데에는 아주 아름다운 방법이 숨어 있었다.


중력 도움, Gravity Assist.


행성 가까이를 지나며 행성의 운동과 중력을 이용해 탐사선의 속도와 방향을 바꾸는 방법이다.


인간이 목성의 중력을 만든 것이 아니다.


토성의 움직임을 만든 것도 아니다.


목성은 이미 돌고 있었고 토성도 이미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


인간은 계산했다.


그리고 정확한 순간에 그 곁을 지나갔다.


잠깐 길을 빌렸다.


김제에서는 전리층을 빌렸고

보이저는 행성의 중력을 빌렸다.


다시 차창 밖을 봤다.


철탑 사이로 걸린 가느다란 선 너머에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엉뚱한 생각 하나가 따라왔다.


그렇다면 우주에도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길이 있지 않을까.


물에는 물길이 있다.


잔잔한 곳이 있고 급류가 있고 폭포가 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려면 힘껏 노를 저어야 하지만 흐르는 방향을 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주도 완전히 평평하지 않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보여주었듯 질량과 에너지는 시공간의 기하를 바꾼다. 은하와 은하단 역시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지 않고 거대한 필라멘트와 공허가 이어지는 우주 거대구조를 이룬다.


사진으로 보면 그것은 묘하게 강줄기처럼 보인다.


이어지고 갈라지고 다시 모인다.


그렇다면 아주 먼 훗날의 누군가는 더 큰 엔진을 만드는 대신 그 굽어진 곳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전리층을 발견했듯.


보이저가 행성의 중력을 빌렸듯.


우리가 아직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우주의 물길을 찾아서.


그 생각 끝에서 숫자 하나가 떠올랐다.


137.


정확하게는 약 1/137로 익숙한 미세구조상수.


빛과 전하를 띤 입자 사이의 전자기적 상호작용 강도와 관련된 무차원 상수다. 왜 자연이 이런 값을 갖는지는 오랫동안 물리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왔다.


나는 137의 비밀을 모른다.


우주의 물길이 정말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인간이 알아내기 훨씬 전부터 그 숫자는 자연 속에 있었고, 인간이 중력을 이해하기 전부터 행성은 서로를 당기고 있었다.


우리가 전리층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에도 하늘은 그곳에 있었다.


법칙이 먼저 있었고 우리는 나중에 발견했다.


차는 이미 김제를 지나 한참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까 보았던 철탑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처음에는 참새를 잡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 거대한 그물은 새 한 마리 잡고 있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하늘의 길을 붙잡고 있었다.


그 철탑 몇 개 때문에 생각은 전리층을 지나 목성과 토성까지 갔다가, 어느새 이름 모를 우주의 물길까지 가버렸다.


시작은 별것 아니었다.


김제 들판을 지나며 무심코 던진 한마디였다.


“근데 저게 뭐지?”


생각해보면 발견은 늘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을 한 사람이 조금 오래 바라보는 것.


그리고 이미 그곳에 있던 길을,


뒤늦게 발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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