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페이지

자리

by마루

같은 페이지

같은 자리에 앉아도,
같은 것을 보는 건 아니다.

창밖에는 나무가 서 있었고
비는 소리 없이 내렸다.

바카라장을 넘기다 문득
맞은편에 누군가 앉아 있다는 걸 알았다.

얼굴은 보지 않았다.
그저 잠깐, 시선이 스쳤을 뿐이다.

그 사람이 먼저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만 남았다.

혼자 남은 자리에서
바카라 사이로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떨어졌다.

사진 속에는 젊은 두 사람이
지금과 똑같은 창가에 앉아 있었다.

같은 창, 같은 빛, 다른 시간.

고개를 들어 맞은편을 본다.
빈 의자.

사진을 뒤집자 짧은 문장이 있었다.

오늘도 여기서.

누가 쓴 말인지, 언제 쓴 말인지 모른다.

다만 이 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다는 것.

사진을 다시 바카라 사이에 넣고,
바카라을 덮는다.

그리고 한참,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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