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이었다. 벽 흐린 날이었다. 숲 아래로 희뿌연 풍경 하나가 길게 누워 있었다. 나는 한참을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벽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람 없는 어느 날, 안개가 내려앉은 호수 같았다. 사진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는데 내 눈앞의 풍경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눈으로 먼저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 먼저 보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