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보내지 않은 것 비가 오고 있었다.

비

by마루

아무도 보내지 않은 것

비가 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늘었다.


창문에 붙은 물방울들이 천천히 아래로 흘러내렸다. 맞은편 아파트의 불빛이 물방울 속에서 길게 늘어졌다가 사라졌다.


그녀는 베란다에 서서 빨래를 걷고 있었다.


그때 하늘이 번쩍했다.


소리는 없었다.


하나.


둘.


셋.


쾅.


멀리서 천둥이 왔다.


그녀는 젖은 수건을 털다가 손을 멈췄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울고 있었다.


소리가 들린 것은 아니었다.


그냥 알았다.


아주 멀리서 누군가가 혼자 울고 있다는 것을.


슬픈 이유도 몰랐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몰랐다.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한동안 베란다에 서 있었다.


다시 번개가 쳤다.


이번에는 아무 느낌도 없었다.


“별일이네.”


그녀는 빨래를 들고 들어왔다.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다.


며칠 뒤였다.


시장에서 감자를 고르고 있었다.


큰 것 몇 개를 봉지에 담다가 갑자기 손이 멈췄다.


기다려.


누가 말한 것 같았다.


그녀는 뒤를 돌아봤다.


생선을 고르는 아주머니.


카트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


휴대전화를 보며 걷는 학생.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시 감자 하나를 집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계산을 하고 시장을 나왔다.


횡단보도 앞에 섰다.


초록불이 들어왔다.


사람들이 움직였다.


그녀도 한 발을 내디뎠다.


또 그 느낌이 왔다.


이번에는 말이 아니었다.


두려움.


너무 강해서 숨이 막혔다.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뒤에 있던 사람이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아, 죄송합니다.”


그 사람이 횡단보도로 들어갔다.


그 순간 오른쪽 골목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미끄러져 나왔다.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오토바이는 횡단보도 앞에서 넘어졌다.


몇 초 동안 모든 것이 엉켰다.


그녀는 움직이지 못했다.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봤다.


그녀만 다른 것을 생각했다.


나는 왜 멈췄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꿈을 꾸었다.


이상한 곳이었다.


바다가 있었다.


그런데 파도가 없었다.


물은 바다 위에 붙어 있지 않고 천천히 공중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하늘에는 밝은 것이 두 개 있었다.


해처럼 보였지만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았다.


검은 풀이 바람도 없는데 한쪽으로 누웠다.


그 끝에 무언가가 서 있었다.


사람 같지는 않았다.


멀어서 형태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게 반가웠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우연히 길에서 만난 것처럼.


그것이 무언가를 말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입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마음속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말이 아니었다.


외롭다.


그것뿐이었다.


그녀는 잠에서 깼다.


베개가 젖어 있었다.


자신이 울고 있었다.


그녀는 꿈을 잘 믿지 않았다.


점도 보지 않았다.


종교도 없었다.


그래서 며칠 지나면 잊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같은 꿈을 또 꾸었다.


이번에는 조금 가까웠다.


두 개의 해.


공중으로 올라가는 물.


검은 풀.


그리고 멀리 서 있는 그것.


이번에는 슬픔이 아니었다.


궁금함이었다.


그것도 자신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꿈속에서 손을 들었다.


그것도 무언가를 움직였다.


그 순간 잠에서 깼다.


새벽 세 시였다.


그녀는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갔다.


식탁 위에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자신이 언제 그렸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원 하나.


그 안에 작은 점들이 있었다.


그녀는 종이를 구겨 쓰레기통에 버렸다.


한 달쯤 지나 이상한 일이 생겼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오래된 동굴 하나가 발견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의 손자국과 동물 그림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설거지를 하며 대충 보고 있었다.


화면이 바뀌었다.


동굴 가장 깊은 곳에서 발견된 그림이었다.


접시를 놓치고 말았다.


원 하나.


그 안의 작은 점들.


며칠 전 자신이 버린 그림과 같았다.


그녀는 쓰레기통을 뒤졌다.


종이는 이미 없었다.


그날부터 그녀는 기록하기 시작했다.


꿈을 꾸면 그림을 그렸다.


이상한 느낌이 오면 시간만 적었다.


해석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무 관계도 없어 보였다.


어느 날은 이유 없이 기뻤다.


어느 날은 아무도 죽지 않았는데 누군가를 잃은 것처럼 슬펐다.


어느 날은 길을 걷다가 갑자기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었다.


그러다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장 강한 느낌에는 말이 없었다.


언제나 아주 단순했다.


무섭다.


보고 싶다.


살고 싶다.


혼자 있기 싫다.


괜찮다.


여기 있다.


말이 붙는 순간 오히려 희미해졌다.


그녀는 그것이 이상했다.


사람끼리도 말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것은 반대였다.


말이 없을수록 정확했다.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그 일을 거의 잊고 살았다.


가끔 꿈을 꾸었지만 예전처럼 놀라지 않았다.


두 개의 해가 뜨는 곳도 이제 낯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오랜만에 그곳을 다시 보았다.


달라져 있었다.


검은 풀이 없었다.


바다는 훨씬 멀어져 있었다.


하늘의 작은 해도 희미했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여전히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알았다.


죽어가고 있었다.


이유는 몰랐다.


전쟁인지,


병인지,


그 별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그것에게 말을 해보려고 했다.


“어디야?”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았다.


“너 누구야?”


사라졌다.


“내 말 들려?”


더 멀어졌다.


그녀는 당황했다.


말로 하면 할수록 그것이 사라졌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냥 생각했다.


가지 마.


그것이 멈췄다.


그녀는 울었다.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찾지 않았다.


그냥 자신이 가진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안타까움.


두려움.


함께 있고 싶은 마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는 혼자가 아니다.


그 순간 처음 보는 감정이 돌아왔다.


인간의 말로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웠다.


고마움과 비슷했고,


안도와도 비슷했고,


아주 오래 찾아다닌 무언가를 마침내 발견했을 때의 마음과도 비슷했다.


그리고 꿈이 끝났다.


다시는 두 개의 해가 뜨는 곳을 보지 못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늙었다.


머리가 희어졌고 계단을 오르면 숨이 찼다.


어느 여름날 손녀가 놀러 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번쩍했다.


손녀가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쾅.


아이가 웃었다.


“할머니, 멀리 쳤나 봐.”


그녀도 웃었다.


“그런가 보다.”


손녀는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비를 바라봤다.


그러다 갑자기 조용해졌다.


“할머니.”


“응?”


“이상해.”


“뭐가?”


아이가 자기 가슴에 손을 올렸다.


“누가 나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누가?”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종이를 가져왔다.


연필을 들고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원 하나.


그 안에 작은 점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가 달랐다.


원 밖에 점 하나가 더 있었다.


그녀는 그 점을 오래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건 뭐야?”


손녀가 말했다.


“몰라.”


그리고 너무 당연하다는 듯 덧붙였다.


“그냥 이렇게 생겼어.”


그날 밤 그녀는 오래전 기록들을 꺼냈다.


수십 년 동안 모아둔 종이였다.


꿈.


시간.


날씨.


그림.


느낌.


평생 답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이제 답을 찾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창밖에서 다시 번개가 쳤다.


방 안이 잠깐 하얗게 밝아졌다.


소리는 한참 뒤에 왔다.


그 짧은 사이,


그녀는 생각했다.


사람은 번개를 아주 오래전부터 보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시절에도 번개는 있었다.


전기를 알지 못한다고 해서 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은 어느 날 그것을 발견했고,


이름을 붙였고,


측정했고,


마침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아직 이름이 없는 것들은 어떨까.


사람이 느끼지만 잡을 수 없는 것.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


한 번도 본 적 없는 곳을 그리워하는 마음.


처음 만난 사람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


이유 없이 찾아오는 두려움.


기도.


영감.


계시.


직감.


사람들은 그것들에게 수많은 이름을 붙였다.


어떤 시대에는 신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영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깨달음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은 우연이라고 했다.


그녀는 어느 것이 맞는지 몰랐다.


어쩌면 전부 틀렸을 수도 있었다.


아주 먼 곳.


빛으로도 헤아리기 어려운 거리에서,


처음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는 작은 생명체 하나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직 문자가 없었다.


별의 이름도 없었다.


전기도 몰랐다.


그날 그들의 하늘에서도 폭풍이 지나가고 있었다.


밝은 것이 번쩍였다.


한참 뒤 땅이 울렸다.


어린 생명체 하나가 겁을 먹고 어미에게 붙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런지는 몰랐다.


누군가 아주 멀리에서,


자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소리는 없었다.


모습도 없었다.


그런데 따뜻했다.


아이는 하늘을 가리켰다.


그리고 아직 몇 개 되지 않는 그들의 말 가운데 하나를 말했다.


어미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말은 오래 살아남았다.


세대가 바뀌면서 뜻이 조금씩 달라졌다.


먼 훗날 그들에게 문자가 생겼을 때,


그들은 그 오래된 말을 가장 먼저 기록했다.


그 말의 뜻은,


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