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그것을 알이라고 불렀을까 옛이야기를 읽다

알

by마루

그들은 왜 그것을 알이라고 불렀을까

옛이야기를 읽다 보면 가끔 이상한 장면을 만난다.


하늘에서 빛이 나고, 어디선가 커다란 알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알에서 사람이 태어난다.


박혁거세 이야기도 그렇다.


어릴 때는 그냥 신화라고 배웠다.


왕은 평범하게 태어나면 안 되니까 알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하늘이 빛나기도 하고, 동물이 나타나기도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세상이 변하는 모습을 오래 보다 보니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이 정말 알을 본 것은 맞을까.


지금의 우리는 비행기를 안다.


자동차도 알고 우주선도 안다.


하늘에서 둥근 물체가 내려와도 그것을 무조건 알이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2천 년 전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처음 보는 매끄럽고 둥근 물체가 눈앞에 있다.


쇠도 아니고 돌도 아니다.


빛까지 난다.


문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안에서 사람이 나온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이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자신이 알고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닮은 것을 찾았을 것이다.


알.


나는 그 대목에서 한참 머물렀다.


혹시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었던 말로 번역해 놓은 광경은 아닐까.


자동차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자동차를 처음 본다면 무엇이라고 기록할까.


쇠로 만든 수레라고 할 것이다.


비행기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새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주에서 온 어떤 물체를 처음 본 사람에게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알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하나가 걸렸다.


우주였다.


우주는 너무 넓다.


가장 가까운 별조차 인간이 지금 가진 기술로는 쉽게 갈 수 없다.


그렇다면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해도 어떻게 여기까지 올까.


아무리 빠른 우주선을 만들어도 결국 속도의 문제에 부딪힌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생각해봤다.


꼭 빨리 와야 하나.


멀리 있는 곳까지 가려고 하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리를 줄이면 어떨까.


종이 한 장을 펼쳐놓는다.


한쪽 끝에 점을 하나 찍는다.


반대편에도 하나 찍는다.


두 점은 멀리 떨어져 있다.


손가락으로 첫 번째 점에서 두 번째 점까지 움직이려면 종이의 길이만큼 가야 한다.


그런데 종이를 반으로 접으면 어떻게 될까.


두 점은 만난다.


움직인 것은 점이 아니다.


종이가 움직였다.


그때부터 우주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우리가 우주여행이라고 부르는 것은 언제나 '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지구에서 출발해서 먼 별까지 간다.


그래서 더 빠른 엔진을 생각하고, 더 긴 시간을 계산한다.


하지만 아주 오래된 다른 문명은 애초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떨까.


그들은 우주를 건너가는 기술이 아니라,


우주를 접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면.


그렇다면 빛보다 빠를 필요도 없다.


수백 년을 여행할 필요도 없다.


저쪽과 이쪽을 잠시 맞닿게 하면 된다.


그리고 그 틈을 지나온다.


2천 년 전 어느 날.


신라의 어느 들판에서도 그런 일이 한 번 일어났다고 상상해본다.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본다.


이상한 빛이 번진다.


천둥도 없다.


바람도 없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었던 자리에 둥근 것이 하나 놓여 있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간다.


두렵지만 궁금하다.


누군가 말한다.


“알이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비슷했으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이 나온다.


그 사람은 말을 했을까.


어쩌면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림을 그렸을지도 모른다.


점을 찍고,


선을 긋고,


원을 그리고,


하늘을 가리켰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 그린다.


처음에는 뜻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에게 전하고, 그 자식이 다시 다음 세대에 전한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림에는 뜻이 붙는다.


어떤 것은 하늘이 되고,


어떤 것은 해가 되고,


어떤 것은 왕을 뜻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것이 처음 무엇을 나타냈는지 잊는다.


기호는 문자가 되고,


사건은 전설이 되고,


낯선 방문자는 신이 된다.


수천 년이 흐른다.


우리는 그 기록을 읽으며 말한다.


신화라고.


그런데 이상하다.


세상에는 비슷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


빛나는 물체.


알에서 태어난 사람.


하늘에서 지식을 가지고 온 신.


별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던 옛사람들.


서로 만난 적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왜 비슷한 상상을 했을까.


물론 우연일 수 있다.


인간이 가진 공통된 상상력일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소설이라면 한 번쯤 반대로 생각해봐도 재미있지 않을까.


혹시 상상이 아니라 목격담이었다면.


다만 그들이 본 것을 설명할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


시간도 그렇다.


우리는 하루와 한 달과 일 년으로 시간을 센다.


그것은 지구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만들어진 시간이다.


지구가 돌고, 달이 돌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다른 별에서 살아온 존재에게 우리의 한 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에게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일렬로 세우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2천 년 전을 지나가 버린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아닐지도 모른다.


종이의 왼쪽 끝과 오른쪽 끝처럼 떨어져 있을 뿐이라면.


공간을 접을 수 있다면,


시간도 접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2천 년 전 그 들판에 나타난 '알'이 반드시 2천 년 전에 출발한 물체일 필요가 없어진다.


어쩌면 아직 출발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생각에 이르자 나는 옛 기록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본다.


알에서 사람이 태어났다.


예전에는 그 문장에서 사람을 보았다.


왕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니까.


그런데 이제는 다른 것이 먼저 보인다.


알.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알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은 탄생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 실제로 보았지만 설명할 수 없었던 무엇.


그래서 가장 가까운 단어 하나를 빌려 적어놓은 것.


알.


수천 년 동안 우리는 그 단어를 생명의 탄생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어쩌면 그 말의 원래 뜻은 훨씬 단순했을지도 모른다.


둥글었다.


빛이 났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거기에 없었다.


나는 바카라을 덮었다.


창밖에는 평범한 아침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비행기 한 대가 아주 멀리 지나가고 있었다.


옛사람이 저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적었을까.


나는 한참 하늘을 바라보다 웃었다.


그리고 다시 바카라을 펼쳤다.


갑자기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 옛날 사람들이 남겨놓은 이야기 속에,


우리가 아직도 신화라고 잘못 읽고 있는 단어가 또 무엇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