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
불금이었다.
원주 무실동의 작은 선술집.
혼자 술 한잔을 마시다가 벽에 붙은 그림 하나를 봤다.
“개처럼 일해야지.”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 좀 힘들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내일도 어차피 힘드니까요.”
피식 웃음이 났다.
위로인지, 체념인지.
웃으라고 써놓은 말인데 이상하게 우리 사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오늘 힘들면 내일은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대신
내일도 힘들 거라고 말해버리는 솔직함.
그래, 사는 게 그런 거지.
나는 다시 술잔을 들었다.
그때 선술집 안으로 전혀 다른 소리가 들어왔다.
딱, 딱, 딱.
목탁 소리였다.
고개를 돌리니 젊은 스님 한 분이 서 있었다.
옴마니반메훔.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다.
술병과 안주가 놓인 선술집,
불금의 취기 속에 서 있는 젊은 스님.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으니 오히려 묘하게 잘 어울렸다.
불교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사바세계라 한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고,
돈 때문에 속상하고,
사람 때문에 웃었다 울고,
하루가 힘들었다며 술잔을 기울이는 곳.
수행이 필요하다면 어쩌면 산사의 고요한 법당보다 이런 곳이 먼저 아닐까.
문득 연꽃이 생각났다.
연꽃은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린다.
탁한 물을 뚫고 올라와 꽃을 피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진흙꽃이라 부르지 않는다.
연꽃이라 부른다.
젊은 스님은 잠시 목탁을 두드렸고
나는 여전히 술잔 앞에 앉아 있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도 아니었다.
스님은 스님의 하루를 살고 있었고,
나는 나의 하루를 살고 있었다.
잠시 후 스님은 밖으로 나갔다.
목탁 소리가 멀어지자 다시 사람들의 이야기와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자리를 채웠다.
나는 다시 벽의 그림을 바라봤다.
“오늘 좀 힘들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내일도 어차피 힘드니까요.”
아까는 우스운 말이었는데
목탁 소리를 한번 듣고 나니 조금 다르게 읽혔다.
내일도 힘들 수 있다.
그렇다고 오늘을 미리 슬퍼할 필요까지 있을까.
진흙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렸다가 피는 연꽃은 없으니까.
그날 나는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고
술을 끊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그냥 남은 술 한잔을 마셨다.
벽에는 여전히
**“개처럼 일해야지”**가 붙어 있었고,
밖에서는 사람들이 각자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불금의 선술집에서
그저 술 한잔 마시던 감자공주.
그날의 술맛은 잊어도
술잔 사이로 지나간 목탁 소리는 오래 기억날 것 같다.
삶은 아마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힘들다고 멈추는 것도 아니고,
흐리다고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도 아닌 것.
오늘도 살아냈다.
그러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