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구동 길모퉁이에서 만난 5,000원의 온기

볼헤드

by마루

단구동 길모퉁이에서 만난 5,000원의 온기

단구동을 지나던 길이었다.


딱히 뭘 사려고 나선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던 길에 오래된 물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중고 골동품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곳은 참 위험하다.

특히 사진 찍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건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게 눈은 바빠진다.

카메라가 있나, 렌즈가 있나, 쓸 만한 장비가 숨어 있나.


그러다 구석에 세워진 삼각대 하나가 눈에 걸렸다.


딱 봐도 세월 좀 먹었다.

다리 하나는 비틀거리고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사진쟁이 눈이라는 게 참 희한하다.


나는 고장 난 다리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위에 달려 있는 볼헤드를 보고 있었다.


‘어? 저건 아직 쓸 만하겠는데?’


사실 작업실에 가면 이것보다 좋은 장비가 있다.

튼튼한 것도 있고 멀쩡한 것도 있다.


그러니까 필요해서 산다는 말은 못 한다.


그냥 오래된 장비를 보면 한 번 만져보고 싶고, 돌려보고 싶고, 아직 살아 있으면 데려오고 싶은 마음.


사진쟁이들에게는 그런 병이 조금씩 있다. ㅎㅎ


“사장님, 이 삼각대 얼마예요?”


“만 원만 줘요.”


볼헤드를 슬쩍 돌려봤다.


MADE IN CHINA.


여기저기 세월의 때도 묻었고 녹도 조금 보인다. 그래도 볼을 움직여보니 제법 부드럽다. 조임도 아직 힘이 있다.


그래서 또 장사꾼도 아니면서 흥정을 시작했다.


“사장님, 이거 중국산이고 삼각대 다리도 고장 난 것 같은데 좀 싸게 안 돼요?”


사장님이 한번 쓱 보더니 말했다.


“에이, 그럼 5천 원만 내고 가져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5천 원.


요즘 커피 한 잔 값 정도다.


얼른 돈을 건네고 삼각대에서 볼헤드만 스르륵 풀었다.


그리고 차에 타자마자 또 꺼내봤다.


아까 가게 앞에서 볼 때와 차 안에서 보는 느낌이 또 다르다.


손으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본다.


낡았다.

때도 탔다.

새것과 비교하면 볼품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손끝으로 전해지는 묵직함은 아직 괜찮다.


“너 아직 은퇴할 때는 아닌 것 같은데?”


집에 가서 깨끗하게 닦아주고 녹도 조금 정리하고 움직이는 부분에 손을 좀 봐주면, 메인 장비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카메라나 서브 장비 하나쯤은 충분히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사진 생활도 그렇다.


비싸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고, 오래됐다고 무조건 버릴 것도 아니다.


내 손에 맞고, 내가 쓸 곳이 있고, 아직 제 역할을 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누군가에게는 고장 난 삼각대에 붙어 있던 낡은 부품 하나.


하지만 오늘 내 눈에는 5천 원짜리 작은 보물이었다.


아마 이런 재미 때문에 중고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무엇을 살지 알고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모르고 들어가는 곳.


오늘 단구동 길모퉁이에서 나는 커피 한 잔 대신 낡은 볼헤드 하나를 샀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 내내 괜히 한 번씩 만져봤다.


별것 아닌데 기분이 좋다.


이런 게 득템이지 뭐.


5천 원을 썼는데, 오늘 하루는 그것보다 조금 더 풍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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