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폰이 있다
주머니 속에는 언제든 전화를 걸 수 있는 스마트폰이 있다.
이름만 누르면 연결되고, 메시지는 순식간에 도착한다.
그런데도 오늘 밤, 나는 공중전화 앞에 섰다.
비는 천천히 내렸고, 젖은 아스팔트는 네온사인을 길게 품고 있었다.
메가커피에서 아이스커피 한 잔을 들고 번호표를 뽑았다.
287.
기다릴 사람도 없는데, 이상하게 그 번호를 버리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폰번호를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아니라, 이 낡은 수화기에.
동전을 넣지도 않았고, 번호도 누르지 않았다.
그저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봤다.
“여보세요.”
툭.
메마르고 퉁명스러운 기계음 하나가 귀를 스쳤다.
그 한마디는 누구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내 목소리도, 그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말을 꺼내려 했지만 끝내 남기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수화기는 오래된 시간을 붙잡고 있었고, 나는 이미 너무 늦은 사람이었다.
비가 더 굵어졌다.
빗방울이 수화기를 타고 흘렀다.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연락처를 가진 기계는 내 손안에 있었지만,
오늘 밤 가장 닿고 싶었던 한 사람에게는
끝내 전화 한 통 걸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