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템
몸체 착륙
그 병장이 우리 내무반에 들어온 것은 부대가 바닷가 쪽으로 옮겨간다는 말이 돌기 전이었다.
들어왔다기보다, 떨어졌다.
전출자도 아니고 신병도 아니었다. 누가 봐도 모양이 애매했다. 어느 오후, 중사가 내무반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뒤에 서 있던 병장 하나를 턱으로 가리켰다.
“야, 여기 임시로 좀 있을 거다.”
그게 전부였다.
우리는 모두 중사를 쳐다봤다. 중사는 귀찮다는 듯 손을 한 번 저었다.
“이유 묻지 말고. 너희보다 고참이니까 한쪽 끝에 자리 하나 마련해 줘.”
병장은 말이 없었다.
머리가 길었다. 아주 긴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같은 내무반 병사들 머리와는 달랐다. 군인 머리라기보다 바깥 공기를 조금 묻히고 다니는 사람의 머리였다. 전투복도 어딘가 흐트러져 있었다. 풀어진 건 아닌데, 우리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지 않았다.
운전병들은 그런 사람을 보면 대충 안다.
3호차 운전병.
높은 사람을 모시는 운전병은 일반 병사들과 조금 달랐다. 머리도 조금 자연스러웠고, 사복을 입고 다니는 날도 있었다. 영외로 나갈 일도 많았다. 부대 안에 있으면서도 부대 밖의 냄새를 알고 있는 사람들.
좋은 보직이었다.
적어도 우리 눈에는 그랬다.
그런 사람이 왜 우리 내무반 끝자리로 밀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
고참들은 떨떠름해했다. 쫄따구가 들어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고참 대접을 하기도 애매했다. 우리보다 계급은 높았지만 우리 내무반 사람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나사 빠진 고참이었다. 이빨 빠진 고참. 대접을 하자니 속이 불편하고, 안 하자니 군번이 걸리는 그런 존재.
그는 자연스럽게 혼자가 되었다.
이병과 일병들이 그의 관물대를 정리해 주었다. 침상 끝자리에 이불을 펴주고, 남는 베개 하나를 가져다 놓았다. 그가 고맙다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고개만 한 번 숙였을 것이다.
그는 그날 저녁 내내 말이 없었다.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 있었다.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꼭 누가 자신을 건드리지 않기만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가 궁금했다.
운전병은 원래 많은 것을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하는 자리다. 하지만 운전병은 또 제일 먼저 눈치채는 자리이기도 했다. 누가 어디를 가는지, 어느 차가 몇 시에 들어오는지, 어느 간부가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지, 그런 것들이 운전병 눈에는 먼저 들어왔다.
그 무렵 우리 부대에는 이상한 공기가 돌고 있었다.
부대 전체가 움직인다는 말이 있었다. 사람 몇 명이 전출 가는 것도 아니고, 차량 몇 대가 먼저 빠지는 것도 아니었다. 산 아래 박혀 있던 철조망과 위병소와 낡은 막사와 활주로의 기억까지 전부 뽑아 바닷가 쪽으로 옮겨간다는 말이었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 나는 처음엔 몰랐다.
부대도 사람처럼 이사를 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민항 정비 회사의 흰 차량들이 부대 안을 들락거렸다. 평소에는 군용 트럭과 지프만 오가던 길에 민간 차량이 들어오니, 부대 전체가 낯선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서류철을 든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고, 어딘가에서는 계속 점검이 있었다.
나는 상병이었다.
운전병이었다.
우리 영감은 늘 전투복을 입고 다녔다.
일반 전투복이 아니었다. 어딘가 오래된 하늘 냄새가 나는 사람이었다. 그는 전투비행사 출신이라고 했다. 팬텀을 몰았다고 했다. 빨간 마후라를 맨 사람들. 병사들은 그 말을 낮은 목소리로 전했다.
그는 성격이 급했다.
보고가 길어지면 손등으로 공기를 잘랐다.
“요점만.”
그게 그의 습관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무섭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길을 잘못 들어도 크게 화내지 않았다. 다만 창밖을 보다가 낮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길보다 흐름을 봐라.”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오래 몰랐다.
영관급들은 밤이 되면 외로움을 많이 탔다.
낮에는 명령을 내리고, 결재를 하고, 사람을 불러 세우던 사람들도 밤이 되면 비슷해졌다. 틈만 나면 영외로 나왔다. 시내의 작은 카페나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다시 부대로 돌아갔다.
그 카페는 작았다.
커피만 파는 곳은 아니었다. 맥주도 팔고, 양주도 팔았다. 종업원은 두세 명 정도였다. 겨울밤 문이 열릴 때마다 술 냄새와 난로 냄새가 같이 새어 나왔다.
나는 차 안에서 시동을 켠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게 운전병의 밤이었다.
누군가는 안에서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밖에서 기다렸다.
우리는 영외로 나갈 때 군복을 입지 않았다. 군용 표식을 가리고, 민간 번호판을 달았다. 사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다른 병사들보다 조금은 길게 두었다. 그게 우리의 특권이었다.
대단한 특권은 아니었다.
남들보다 조금 덜 군인처럼 보이는 것.
남들보다 조금 늦게 자는 것.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
그 정도였다.
헌병대와는 이상한 긴장이 있었다.
헌병들은 다들 무서워했다. 그들은 군대 안의 군대 같았다. 복장을 잡고, 외출을 잡고, 사람을 잡았다. 그런데 운전병들은 그들과도 줄이 닿아 있었다. 헌병대에도 우리 쫄따구들이 파견돼 있었다. 헌병차를 몰고, 갑자기 출동할 때 시내까지 따라붙었다.
시내에는 군인들이 오가는 작은 플랫폼 같은 곳이 있었다. 휴가자들이 지나가고, 미복귀자 이야기가 돌고, 탈영병이나 문제를 일으킨 병사들이 붙잡혀 헌병차에 실려 가는 곳이었다. 거기에는 헌병도 있었고, 운전병도 있었다.
같이 근무하면 친해진다.
같이 욕먹고, 같이 추위에 떨고, 같이 담배를 피우면 계급보다 얼굴이 먼저 익는다.
어느 날 우리 쫄따구 하나가 헌병대에 잡혔다. 복장 불량이었다.
나는 헌병대에 있는 동기를 찾아갔다.
“야, 좀 봐줘라. 우리 애다.”
그 동기는 담배를 물고 난처한 얼굴을 했다.
“몰라. 내 쫄따구들이 잡은 건데 내가 어떻게 하냐.”
“너 진짜 우리하고 막 가자는 거야?”
“나도 뭐 어떻게 할 수 없다니까.”
그 말에 나도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날 밤 운전병들을 전부 모았다.
“야, 앞으로 영감 태우고 나갈 때 길기이 하지 마.”
길기이.
우리끼리 쓰던 말이었다. 영관급이 탄 차가 간다고 헌병초소에 미리 알려주는 신호였다. 우리가 길기이를 쳐주면 헌병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차렷 자세로 인사를 했다.
겉으로 보면 근무를 열심히 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길기이가 없으면 달랐다.
추운 밤 헌병초소 안은 그들만의 세계였다. 난로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고, 화이바는 벗겨져 있고, 워커 끈은 풀려 있었다. 누군가는 컵라면 물을 붓고, 누군가는 의자에 기대 졸았다. 쫄따구 하나만 밖에서 사주경계를 섰다.
그것도 군대였다.
며칠 뒤, 우리 쫄따구 하나가 나에게 조용히 알려왔다.
“김 병장님, 지금 3번 처소에서 라면 먹고 있답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날 나는 영감을 태우고 부대 안을 돌고 있었다. 시찰이라고는 했지만, 늘 그렇듯 차 안은 조용했다. 영감은 뒷좌석에 앉아 창밖만 보고 있었다.
나는 넌지시 말했다.
“저기, 3번 처소 쪽으로 한번 가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영감이 룸미러 너머로 나를 봤다.
“왜.”
“그냥 그쪽도 한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래. 그쪽으로 가자.”
나는 핸들을 틀었다.
그날은 길기이를 치지 않았다.
헌병초소가 가까워졌다. 안쪽은 조용했다. 멀리서도 보였다. 제대로 근무 서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난로 불빛이 흔들렸고, 누군가 안쪽에서 몸을 숙이고 있었다. 라면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차가 가까워지자 초소 안에서 소리가 났다.
“야, 뭐야. 차 내려오는데?”
“신호 없는데요?”
“에이, 그냥 지나가겠지.”
병장 하나가 아주 태연하게 라면을 먹고 있었다. 젓가락에 라면발을 걸친 채였다.
그때 차가 멈췄다.
영감이 문을 열었다.
겨울 공기 속에서 차 문 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났다.
“야.”
그 한마디에 초소 안이 얼어붙었다.
“너희들 근무 뭐 하는 거냐?”
순간 금빛 두 개가 번쩍였다.
계급장이었다.
헌병들이 튀어나왔다. 누군가는 화이바를 찾았고, 누군가는 워커 끈을 밟았다. 누군가는 입에 라면을 문 채 얼어붙었다. 젓가락에 걸린 라면발이 허공에서 식고 있었다.
나는 운전석에서 앞만 보고 있었다.
웃으면 안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더 웃음이 났다.
그 뒤로 헌병대는 일주일 동안 뒤집혔다. 연병장에서는 완전군장을 한 헌병들이 타이어를 굴리고, 흙바닥을 기고, 뛰고, 다시 굴렀다.
며칠 뒤 헌병대 동기가 나를 찾아왔다.
“야,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
나는 모른 척했다.
“뭐가.”
“앞으로 우리 애들이 너희 운전병들 터치 안 할 테니까, 너희도 웬만하면 신호 좀 주고 다녀라.”
“내가 한 게 아니잖아.”
“야, 됐고. 협상하자.”
나는 웃었다.
협상.
군대에는 명령만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거래가 있었다. 누가 누구를 미리 알려주고, 누가 누구를 모른 척해주고, 누가 어느 순간 눈을 감아주는지. 그런 것들이 하루를 굴러가게 했다.
우리는 힘으로만 일 처리하지 않았다.
눈치로 했다.
어쩌면 그때 배운 것이 내 슬롯생활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내가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은 헌병대가 아니었다.
내무반 끝자리에 들어온 그 병장.
그가 왜 좋은 보직에서 빠져나와 우리 내무반에 숨어들었는지, 나는 그게 궁금했다.
그 병장이 빠져나온 부서에도 쫄따구 하나가 있었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휴가철이나 행사 때만 나타나는 애들. 사복을 입고 다니고, 어느 내무반 소속인지도 애매한 애들. 그런 애들은 부대 안에 있으면서도 반쯤 떠 있었다.
우리는 그 애를 불렀다.
“야, 너 이리 와 봐.”
그 애는 처음부터 겁먹은 얼굴이었다. 부른 이유를 이미 아는 눈치였다.
고참 하나가 물었다.
“저 병장 왜 여기 와 있는 거야?”
그 애는 입을 다물었다.
“몰라?”
고개를 저었다.
“야, 너 좀 맞을래?”
그 시절에는 그런 말이 쉽게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때는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던 시절이었다. 계급은 질문이었고, 대답은 늘 아래에서 올라와야 했다.
그 애의 얼굴이 굳었다.
그래도 입은 열지 않았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말에 우리는 오히려 확신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모르는 애는 그냥 모른다고 한다. 말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방법을 바꿨다.
소주는 선양이었다.
안주는 영내에서 몰래 사 온 튀김이었다. 식어 있었고, 기름 냄새가 났다. 그래도 그 밤에는 그게 전부였다. 문제는 술이었다.
술은 적고, 마실 사람은 많았다.
소주 한 병을 종이컵에 나눠 따르면 한 바퀴 돌기도 전에 끝났다. 한 컵씩 마실 수도 없었다. 그 정도 양으로는 아무도 취하지 않았다.
그때 고참 하나가 스텐컵을 가져왔다.
군대에서 쓰던 은색 컵이었다. 찌그러진 자국이 있었고, 안쪽에는 오래된 물때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컵에 소주를 부었다. 한 병이 거의 다 들어갔다.
우리는 피식 웃었다.
“야, 그거 한 컵을 몇 명이서 먹으면 취하냐?”
고참이 젓가락을 하나 꺼냈다.
“마시는 거 아니다.”
“그럼?”
“찍어 먹는 거다.”
처음에는 다들 무슨 소리냐는 얼굴이었다.
“젓가락 하나씩 꺼내.”
우리는 웃으면서도 젓가락을 꺼냈다.
스텐컵이 가운데 놓였다.
젓가락 끝을 소주에 담갔다가 입에 넣었다. 다시 담갔다가 또 입에 넣었다. 술을 마신다고 하기에는 우스웠고, 안 마신다고 하기에는 혀끝이 계속 알싸했다.
우리는 빈속이었다.
처음에는 장난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상하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소주 한 잔도 제대로 마시지 않았는데, 말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건 술에 취한 것이라기보다, 취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취한 것이었다.
입안에는 계속 알코올 냄새가 돌았다. 이야기도 돌았다. 스텐컵 안의 소주는 별로 줄지 않았는데, 취기는 여러 사람에게 천천히 퍼졌다. 분무기로 마른 나무에 물을 뿌리듯, 술기운이 혀끝과 침묵 사이로 스며들었다.
쫄따구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젓가락을 들고 있었지만, 제대로 찍어 먹지는 못했다.
나는 낮게 말했다.
“이제 말해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 병장 왜 여기 온 거야.”
그가 한참 동안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말한 거… 진짜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됩니다.”
“알았다.”
“저 큰일 납니다.”
“알았다니까.”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고참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전부 귀를 세우고 있었다.
그 애가 처음 꺼낸 이야기는 뜻밖에도 아름다웠다.
“그분한테 여자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고참 하나가 피식 웃었다.
“야, 높은 사람도 여자 사귀냐?”
아무도 크게 웃지는 않았다.
“지리산 쪽 국민학교 선생님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젓가락을 멈췄다.
그건 지금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영감이 아직 하늘에 있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는 팬텀을 몰았다. 빨간 마후라를 맨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자기 기종에 대한 이상한 자부심이 있었다. 비행기끼리도 계급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누구는 빠르고, 누구는 무겁고, 누구는 진짜 사내들이 타는 기종이라고.
팬텀을 몰던 사람들은 팬텀 이야기를 할 때 눈빛이 달라졌다고 했다.
무겁고, 거칠고, 소리가 크고, 하늘을 찢는다고 했다.
그 말은 꼭 자기 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
훈련 스케줄이 나오면 영감은 지리산 쪽 코스에 유난히 들떴다고 했다.
그 아래에 그녀가 있었다.
지리산 자락의 작은 국민학교. 운동장에 흙먼지가 일고, 낮은 교사 지붕 너머로 산그늘이 내려오는 곳. 그곳에 젊은 여선생이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했다.
수업 중이던 선생님이 시계를 본다. 아이들이 바카라을 펴놓고 웅성거린다. 선생님이 창밖을 한 번 보고 말한다.
“얘들아, 오늘 열 시쯤 비행기가 지나갈 거야.”
아이들이 고개를 든다.
“진짜요?”
“우리 운동장에 나가서 손 흔들어 줄까?”
아이들은 난리가 난다. 의자가 밀리고, 바카라상이 삐걱거리고, 누군가는 벌써 창문 쪽으로 달려간다.
열 시가 가까워진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없다. 산은 조용하고, 운동장에는 아이들 숨소리만 있다.
그러다 저 멀리서 낮은 굉음이 밀려온다.
처음에는 바람소리 같고, 그다음에는 천둥 같고, 마지막에는 하늘 전체가 떨리는 소리다.
“온다!”
팬텀이었다.
한 대가 아니었다. 몇 대가 산줄기를 타고 나타났다. 회색 기체들이 지리산 협곡을 따라 낮게 지나갔다.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이들은 두 손을 흔들었다. 작은 손들이 운동장 위에서 파도처럼 흔들렸다.
그중 한 대가 조금 더 낮게 지나갔다고 했다.
아주 잠깐이었다.
조종석 안의 사람이 땅 위의 여자를 제대로 봤는지 알 수 없다. 운동장에 서 있던 여자가 어느 기체에 그가 타고 있었는지 알아봤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그런 걸 믿고 산다.
보였다고 믿고, 들렸다고 믿고, 닿았다고 믿는다.
팬텀의 꼬리가 산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선생님은 하늘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소리가 멀어진 뒤에도 그 굉음은 그녀의 귀에 오래 남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처음에 그 이야기가 사건인 줄 알았다.
높은 사람이 비행기를 몰고 사랑하는 여자 앞을 지나갔다. 훈련 코스를 핑계로 학교 위를 선회했다. 그래서 문제가 됐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건 과거였다.
영감이 아직 하늘에 있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지금 문제가 된 것은 하늘이 아니었다.
차량이었다.
기름이었다.
일지였다.
우리 운전병들은 운행일지를 썼다. 그날 어디를 갔는지, 몇 시에 출발했는지, 몇 시에 복귀했는지, 기름은 얼마나 썼는지 전부 적었다. 차는 그냥 굴러가는 물건이 아니었다. 군대에서 차는 명령으로 움직였고, 기름은 숫자로 남았다.
그때는 기름도 아무 데서나 넣지 못했다.
가까운 부대에 가서 유류증을 내면 기름을 넣어줬다. 작은 종이 한 장이 차를 움직였다. 그 종이는 작았지만, 이상하게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누가 어디를 갔는지.
얼마나 멀리 갔는지.
얼마나 자주 갔는지.
중사가 그걸 뒤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운행일지였다.
그다음에는 유류증이었다.
그다음에는 그 증이 찍힌 부대였다.
중사는 증 하나를 들고 어느 부대로 갔다고 했다. 정확한 부대 이름은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런 건 원래 소문 속에서도 흐릿해진다.
“이 번호 차량, 여기서 기름 넣은 기록 좀 볼 수 있습니까?”
상대 부대에서는 별 의심 없이 일지를 내줬다고 했다.
중사는 한참을 들여다봤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날짜, 차량 번호, 리터 수, 담당자 도장. 늘 보던 숫자들이었다. 그런데 숫자는 거짓말을 해도 티가 난다. 계속 보면 튀는 것이 있다.
어느 날짜에는 기름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어느 날짜에는 동선에 비해 리터 수가 맞지 않았다.
어느 날짜에는 가까운 부대만 돌았다기에는 기름이 과했다.
중사가 물었다고 했다.
“이거 왜 이렇게 많이 들어갔습니까?”
상대는 난처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희는 모아서 주는 거라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군대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다. 높은 사람 차가 오면, 2호차니 3호차니 하는 차가 오면, 아래에서는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규정은 있었지만, 계급이 먼저 보였다.
“아시잖습니까. 그런 차가 와서 좀 해달라고 하면, 저희가 못 한다고 하기가…”
중사는 그 말에서 바로 눈치를 챘다.
그는 다시 일지를 봤다. 날짜를 맞췄다. 기름을 맞췄다. 운행 시간을 맞췄다.
그리고 동선이 보였다고 했다.
동해 쪽이었다.
강릉행이었다.
웬만하면 그런 차는 가까운 부대만 이용했다. 호출이 있으면 움직이고, 없으면 영내에서 대기했다. 3호차 운전병은 편한 보직이었다. 바깥 공기를 맡고 다녔고, 터치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영외 건물에 차를 세워도 누가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중간중간 숫자가 튀었다.
기름이 튀고, 시간이 튀고, 동선이 튀었다.
중사는 보고서를 썼다.
그리고 용감하게 보고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용감한 보고가 늘 용감한 결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 운전병을 잡아넣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일을 크게 만들 수도 없었다. 소문이 나가면 곤란했다. 누가 누구를 태우고 어디까지 갔는지, 그 차가 왜 그쪽으로 갔는지, 기름은 왜 그렇게 들어갔는지.
장부 위에서는 숫자였지만, 사람들 입에 오르는 순간 이야기가 됐다.
그래서 사건은 조용히 접혔다.
운전병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구속도 아니고, 정식 징계도 아니고, 그냥 밀려났다. 누가 봐도 애매한 모양으로.
그가 우리 내무반 끝자리에 들어온 이유가 그거였다.
쫄따구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스텐컵 속 소주는 거의 줄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조금씩 취해 있었다. 술 때문인지, 이야기가 길어서인지, 아니면 숫자 뒤에 숨어 있는 사람의 외로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영감을 다르게 생각했다.
늘 전투복을 입고 있던 사람.
하늘에서 팬텀을 몰던 사람.
지리산 자락의 여선생에게 굉음으로 마음을 전하던 사람.
그리고 지금은 작은 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운전병을 밖에 세워둔 채 밤을 버티는 사람.
얼마 뒤, 나는 그의 몸을 보게 된다.
새벽 점검이 끝난 뒤였다. 관사 쪽으로 차를 대기하러 갔을 때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안에서는 물소리가 났다. 나는 돌아서려다가 그를 보았다.
그는 전투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얇은 러닝셔츠 하나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봐서는 안 될 것을 보았다.
그의 몸은 내가 상상한 군인의 몸이 아니었다.
단단하고 근육질인 몸도 아니었다.
훈련으로 다져진 몸이라기보다, 어딘가에서 한 번 부서졌다가 억지로 다시 이어 붙인 몸 같았다.
가슴과 옆구리, 어깨 아래로 길고 짧은 자국들이 지나가 있었다. 칼자국 같기도 했고, 불에 덴 흔적 같기도 했다. 어떤 자국은 깊게 패여 있었고, 어떤 자국은 하얗게 당겨져 있었다. 살은 제멋대로 아물어 있었다. 몸이라는 것이 원래 하나의 덩어리라면, 그의 몸은 여러 번 찢긴 조각들을 다시 모아놓은 것 같았다.
나는 숨을 삼켰다.
그가 나를 보았다.
나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군화 끝만 보며 말했다.
“제가… 장군님 몸을 봤습니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온 순간, 나는 내가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못 본 척하면 될 일이었다. 운전병은 많은 것을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입이 먼저 움직였다.
“상처가… 왜 그렇게 심하십니까.”
방 안이 조용해졌다.
그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눈을 찌끈 감았다.
그 얼굴은 화난 얼굴이 아니었다.
오래된 소리를 다시 듣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랜딩기어가 안 내려온 적이 있다.”
그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팬텀은 무겁다. 하늘에 있을 땐 괜찮은데, 땅으로 내려올 때는 더 무겁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밖에서는 어디선가 트럭 후진음이 들렸다.
삐, 삐, 삐.
부대는 여전히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은 접어야 했다. 비행기도, 자존심도.”
그가 낮게 웃었다.
“몸체로 내렸다.”
나는 그 말의 뜻을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비행기가 몸으로 땅에 닿는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러닝셔츠 위로 손을 올렸다. 손바닥이 닿은 곳은 흉터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자리였다.
“살았으면 된 거지.”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날 이후 나는 그가 전투복을 왜 늘 입고 있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건 계급을 보여주는 옷이 아니었다.
상처를 덮는 옷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하늘에서 한 번 땅으로 떨어진 사람이 다시 사람들 앞에 서기 위해 입는 마지막 갑옷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애틋함을 다 알지 못했다.
그가 정말 누구를 만나러 갔는지, 강릉 쪽으로 튄 숫자들이 무엇을 향한 것이었는지, 그 길이 비리였는지 외로움이었는지, 아니면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 땅 위에서 견디지 못해 만든 작은 탈선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운행일지에는 감정이 적히지 않는다.
유류증에는 첫사랑이 적히지 않는다.
기름의 리터 수는 사람의 고독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사람은 결국 그런 종이에 걸린다.
그날 밤, 쫄따구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래서 그 병장님이 여기 온 겁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내무반 끝자리에는 그 병장이 누워 있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말이 없었다. 그는 이불을 어깨까지 덮고 옆으로 돌아누워 있었다. 얼굴은 벽 쪽을 향하고 있었다. 잠든 것 같았지만, 나는 그가 자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는 우리보다 먼저 알고 있었고,
우리보다 먼저 밀려났고,
우리보다 먼저 입을 다문 사람이었다.
스텐컵 속에는 아직 소주가 조금 남아 있었다.
나는 젓가락 끝을 거기에 살짝 찍었다.
혀끝이 싸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아주 멀리서 팬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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