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 서울 롯데월드.
군대를 다녀온 뒤 처음 손에 넣은 카메라는 니콘 F였다.
무겁고 단단한 금속 바디.
손에 쥐는 순간 사진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기분뿐이었다.
나는 카메라를 전혀 몰랐다.
셔터속도도, 조리개도 몰랐다.
설명서를 펼쳐 놓고 적혀 있는 대로 다이얼만 맞춘 뒤 셔터를 눌렀다.
찰칵.
그게 내가 아는 사진의 전부였다.
어느 날 여동생과 서울 롯데월드에 갔다.
처음 보는 야경이었다.
도시의 불빛은 눈부셨고, 나는 그 풍경을 필름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손은 떨렸다.
필름은 스물네 장뿐이었다.
한 장을 누를 때마다 돈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여동생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빠, 잘 찍어."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두려웠다.
한 장도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필름 한 통을 다 찍고도 바로 사진관으로 가지 못했다.
바카라상 서랍에 넣어 둔 채 몇 달을 보냈다.
잊은 것이 아니었다.
결과가 두려웠던 것이다.
그 시절에는 인터넷도, AI도 없었다.
사진을 배우려면 바카라을 읽거나 사진관 아저씨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제천 현대칼라 사진관에서 나는 물었다.
"아저씨, 야경은 어떻게 찍어야 잘 나와요?"
아저씨는 말없이 필름 한 통을 꺼내더니 툭 던지듯 말했다.
"코닥 ASA 400 넣어."
나는 그 필름만 넣으면 야경을 잘 찍을 수 있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사진을 만드는 것은 필름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몇 달이 흘렀다.
어느 날 여동생이 말했다.
"오빠, 이제 사진 찾으러 가자."
더는 미룰 수 없었다.
필름을 들고 제천 현대칼라 사진관으로 갔다.
일주일 뒤 다시 사진관을 찾았다.
아저씨는 현상된 필름을 라이트박스 위에 올려놓고 하나씩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손짓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잘 나왔나요?"
아저씨는 잠시 고개를 저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필름 한 컷을 손가락으로 집어 들며 웃었다.
"이거."
그 한 장에는 여동생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날 나는 사진을 잘 찍었는지 끝내 묻지 않았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먼저 웃는 사람은 늘 여동생이다.
1987년 11월, 서울 롯데월드.
니콘 F로 눌렀던 셔터 한 번이, 지금은 여동생의 웃음을 기억하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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