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매촌, 붉은 골목에 남겨진 것들

희매촌

by마루

희매촌, 붉은 골목에 남겨진 것들

원주에는 희매촌이라는 이름의 골목이 있었다.

누군가는 그곳을 홍등가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성매매 집결지라고 불렀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저 모른 척 지나갔다.


나 역시 오래전부터 그 골목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원주역 근처.


40계단 아래.


밤이면 붉은 등이 켜지고 낮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지는 곳.


희매촌은 오랫동안 원주의 가장 밝은 곳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가장 어두운 곳으로 남아 있었다.


몇 년 전이었다.


철거를 앞둔 희매촌에서 마지막 문화예술 프로젝트가 열렸다.


예술가들이 모여 골목을 전시장으로 바꾸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가에게 폐허는 늘 묘한 감정을 준다.


사람은 떠났지만 사람의 흔적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좁은 골목을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생각보다 작았다.


습기가 벽에 스며 있었고 낡은 벽지는 세월을 견디지 못한 채 뜯겨 있었다.


예술가들은 그 공간에 작품을 걸어두었다.


그중에는 목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난 사람들이 그려진 그림도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기괴했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얼굴들.


인간의 욕망을 비틀어 표현한 듯한 그림이었다.


사람들은 작품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벽이었다.


작품이 걸리지 않은 벽.


빛바랜 벽지 위에 칼로 긁은 자국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낙서인 줄 알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시간이었다.


몇 월 며칠.


누구의 이름.


그리고 숫자.


120cm.


127cm.


132cm.


아이들의 키를 재며 남긴 흔적이었다.


나는 한동안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희매촌은 많은 사람들에게 욕망의 공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 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아이를 키웠다는 이야기.


누군가는 밥을 지었고,


누군가는 학교를 보냈고,


누군가는 감기에 걸린 아이의 이마를 만졌다는 이야기.


우리는 종종 장소를 하나의 이름으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공간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 안에는 수많은 삶이 겹겹이 쌓여 있다.


예전에 나는 술에 취해 40계단을 걸어 내려가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적이 있다.


그 소설 속에는 자신의 가슴에 돌덩이가 있다고 울던 여자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비극이라고 읽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 돌덩이는 사람의 몸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마음속에 있었을 것이다.


안아주지 못한 시간.


말하지 못한 사연.


도망치듯 지나간 세월.


그런 것들이 돌덩이가 되어 남았을 것이다.


희매촌의 벽을 보며 나는 그 소설을 떠올렸다.


벽에 남겨진 키 자국도 어쩌면 같은 종류의 흔적이었다.


사라지지 못한 시간의 무게.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성매매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


나는 정답을 모른다.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문제이고,


어느 나라에서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희매촌에도 사람들이 살았다는 사실이다.


뉴스에서는 집결지라고 말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 있었다.


웃던 사람.


울던 사람.


사랑하던 사람.


미워하던 사람.


그리고 아이들.


그 사실만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희매촌은 많이 달라졌다.


건물들은 철거되었고,


골목은 정비되고 있다.


여성 자립 지원 공간과 문화 공간 조성도 진행되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덮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 변화는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도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하지만 나는 가끔 생각한다.


과거를 없애는 것과 기억을 지우는 것은 다른 일이라고.


그날 나는 수많은 작품을 찍었다.


목 긴 사람들의 그림도 찍었고,


낡은 방문도 찍었고,


붉은 전등도 찍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지금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예술 작품도 아니고 붉은 골목도 아니다.


벽지 위에 남아 있던 숫자들이다.


120cm.


127cm.


132cm.


누군가의 어린 시절.


누군가의 성장 기록.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


나는 희매촌에서 욕망을 본 것이 아니라 삶을 보았다.


그리고 아마 그것이 내가 그 골목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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