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다섯 길래 느티나무

원주 관설동

by마루

다섯 길래 느티나무

마을 어귀에는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너무 오래되어 아무도 나이를 몰랐다.


어른들은 할아버지 때부터 있었다고 했고,


할아버지들은 그 위 할아버지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오래된 나무라고 불렀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아이들에게 그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이었고,


가장 넓은 놀이터였고,


가장 높은 전망대였다.


여름이면 나무 아래 평상이 놓였다.


장에 다녀온 사람들은 짐을 내려놓고 쉬었고,


논에서 돌아온 농부들은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누어 마셨다.


장마가 오면 빗방울이 잎사귀를 때렸고,


겨울이면 까치들이 가장 먼저 앉는 자리였다.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태어나고,


학교에 가고,


군대를 가고,


결혼을 하고,


다시 돌아오는 동안에도.


어느 해 여름이었다.


마을에 도로가 새로 난다는 소식이 들렸다.


군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줄자를 들고 다녔다.


흰 종이에 선을 긋고,


말뚝을 박고,


무언가를 적었다.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구경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말했다.


"느티나무를 베야 한대."


처음에는 웃었다.


그 큰 나무를 누가 벤단 말인가.


하지만 며칠 뒤 빨간 페인트가 나무 몸통에 칠해졌다.


그때부터 마을은 조금 이상해졌다.


장에 가던 할머니도 나무를 한 번 올려다봤고,


학교 가던 아이들도 걸음을 늦췄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껍질의 깊은 주름.


태풍에 부러졌다 다시 자란 가지.


수십 년 동안 박혀 있던 못 하나.


사람들은 그제야 알았다.


늘 거기에 있었기에 보지 못했던 것을.


며칠 뒤 마을 회관에 사람들이 모였다.


누군가는 도로가 필요하다고 했다.


누군가는 나무를 살려야 한다고 했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느티나무는


그날도 바람에 잎을 흔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 하나가 일어섰다.


말수가 적던 아이였다.


아이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도화지였다.


그 위에는 느티나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 나무는 우리 마을 사진입니다."


순간 회관이 조용해졌다.


아이는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랑 찍은 사진도 여기 있고, 운동회 사진도 여기 있고, 동생 돌사진도 여기 있어요."


사람들은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러다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나무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말하고 있었다.


며칠 후.


군청에서도 사람들이 다시 내려왔다.


결국 도로는 조금 휘어졌다.


아주 조금.


자동차는 조금 더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느티나무는 남았다.


수십 년이 지났다.


마을은 많이 변했다.


기와집은 사라지고,


편의점이 생기고,


버스도 자주 다녔다.


하지만 느티나무는 아직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 아래서 사진을 찍었다.


결혼사진도 찍고,


돌사진도 찍고,


손주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옛날 도화지를 들고 나무를 살려달라던 아이가


흰머리가 된 채 손주 손을 잡고 나무 아래에 섰다.


손주가 물었다.


"할아버지.


왜 사람들은 이 나무를 좋아해?"


노인은 한참 동안 나무를 올려다봤다.


바람이 지나갔다.


잎사귀가 흔들렸다.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주 손을 잡고


나무 그늘 아래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어떤 것은 설명하면 작아진다.


느티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마을 사람들보다 오래,


사진들보다 오래,


조용히 시간을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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