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

감

by마루

까치밥

강릉의 한 담장 위에 감이 몇 개 달려 있었다.


늦가을이었다.


노랗게 익은 감이었다.


누가 보면 가을 풍경 하나쯤으로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감을 보며 이상한 생각을 했다.


아직 따지 않았네.


감을 따 본 사람은 안다.


감은 익었다고 바로 따는 게 아니다.


너무 일찍 따면 떫고,


말리는 과정에서 날씨가 받쳐주지 않으면 썩는다.


기다려야 한다.


햇빛을 보고,


바람을 보고,


날씨를 봐야 한다.


그런데 또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어느 날 까치가 날아온다.


하나를 쪼고,


둘을 쪼고,


며칠 지나면 나무는 텅 빈다.


그래서 감을 키우는 사람은 안다.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


결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문득 글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문장은 너무 일찍 쓰면 땡감이다.


생각은 있는데 아직 떫다.


억지로 의미를 붙이고,


억지로 결론을 만들고,


억지로 감동을 만들게 된다.


그래서 가끔은 묵혀야 한다.


며칠을.


어쩌면 몇 달을.


그렇게 시간을 지나고 나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가을이 보이고,


겨울이 보인다.


그때 비로소 글이 익는다.


그런데 여기에도 욕심이 있다.


잘 익은 감을 하나도 남김없이 따고 싶은 마음.


좋은 문장을 하나도 빠짐없이 적고 싶은 마음.


내가 느낀 것을 전부 설명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감나무를 아는 사람은 안다.


모든 감을 따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몇 개는 남겨둬야 한다.


까치밥으로.


겨울이 깊어질수록


나무 끝에 남은 감 몇 개가 더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그것을 게으름이라 하지 않는다.


배려라고 부른다.


자연에 대한 예의라고 부른다.


문득 좋은 글도 그런 것 같다.


작가가 모든 것을 가져가면


독자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


설명을 조금 남기고,


마음을 조금 남기고,


의미를 조금 남겨둬야 한다.


그래야 누군가가 날아와


자기 기억으로 쪼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글은 감과 닮았다고.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때를 놓치기 전에 따야 하고,


마지막 몇 개는 까치밥으로 남겨둘 줄 알아야 한다고.


어쩌면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창고에 가득 쌓인 감이 아니라,


겨울 하늘 아래 끝까지 매달려 있던


그 몇 개의 까치밥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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