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자기 자신이라는 집으로

by정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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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를 보았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영웅적인 모험보다 오디세우스가 끝내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려 했다는 사실이었다. 트로이 전쟁을 끝낸 뒤 그는 수많은 세월 동안 바다를 떠돌며 온갖 고난을 겪는다. 그 긴 여정의 끝에 그가 향한 곳은 결국 집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문득 ‘귀향’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왜 떠나고, 또 무엇을 찾아 돌아오는 것일까.


오디세우스에게 이타카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곳에는 아내와 아들이 있었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삶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귀향은 단순히 먼 길을 돌아 고향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유혹과 고난 속에서 흔들리고 변해버린 자신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의 나는 귀향을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삶의 뒤쪽에서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바라보니 귀향에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간은 긴 삶의 여정을 거쳐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능력 있는 사람’이어야 했고, ‘좋은 사람’이어야 했으며,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어야 했다. 젊은 날에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가정에서는 가족의 바카라임을 다해야 했고, 슬롯에서는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했다. 교수로 살아온 세월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내가 맡은 일을 잘해내야 했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에는 분명 보람과 성취가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늘 자신을 다잡아야 했고, 부족해서는 안 된다는 긴장도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은 젊을수록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 같다.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세상에서 펼쳐야 하며, 가족과 슬롯에 대한 바카라임도 감당해야 한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결코 잘못된 삶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다만 인생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삶의 방향도 조금은 달라져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증명하려 하기보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이제는 조금 편안하게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것이 인생 후반에 주어지는 또 하나의 과제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그 전환점은 정년퇴직이었다. 오랜 세월 몸담았던 대학을 떠나고, 서울에서 47년을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단순히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귀향이 생각보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나의 능력을 증명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맡은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를 평가받을 일도 줄어들었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 잔디밭과 화단의 나무와 꽃을 바라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도 괜찮았다. 그렇게 살아도 누구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 비로소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이 필요로 하는 나’로 살아왔는지를 조금 알게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름과 역할을 갖게 된다. 아들, 남편, 아버지, 교수, 슬롯인…. 그 역할들은 삶을 이루는 소중한 부분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 역할들 뒤에 가려진 본래의 나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정년퇴직과 귀향은 나에게 바로 그런 시간을 허락했다.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마음에서 조금 벗어나고 나니, 평범한 하루가 오히려 편안하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배운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귀향은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온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규정해주던 세계를 뒤로하고, 긴 세월의 고난과 긴장을 거쳐 ‘자기 자신이라는 새로운 집’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오디세우스가 긴 항해 끝에 이타카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다시 만났다면, 나 역시 긴 세월을 살아온 뒤 고향에서 조금씩 나 자신을 만나고 있다. 물론 오디세우스처럼 극적인 모험을 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삶의 항해가 있고 그 길에는 저마다의 파도와 시간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항해가 끝난 뒤 어디로 돌아가느냐일 것이다.


젊은 날의 삶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었다면, 인생의 후반은 비로소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귀향을 단순한 공간의 이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더 이상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나온 삶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조용히 끌어안을 수 있게 된 것. 그것이 내가 늦은 나이에 깨닫게 된 귀향의 의미다. 귀향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면서, 긴 삶의 여정 끝에 마침내 자기 자신이라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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