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네이버TV에서 빛바랜 고전영화들을 자주 찾아보곤 한다. 오래전 영화라 흑백이 많지만, 오히려 화려한 색채가 배제된 스크린이 주는 명암의 묘한 감동이 참 좋다. 그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다룬 내용과 주제가 요즘 영화들과 달리 군더더기 없이 명확하여 더욱 마음에 든다. 얼마 전 감상한 영화 <성공의 달콤한 향기> 역시 그러했다. 뉴욕의 유력 칼럼니스트가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언론 권력과, 그 권력의 단맛을 나누어 맛보려고 아부하는 삼류 홍보업자의 연기는 실로 압권이었다. 활자 몇 줄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미디어의 무서운 실체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영화였다.
돌이켜보면 현대 슬롯에서 언론의 독점적 지위는 예전만 못하다지만, 그 권력의 잔영은 요즘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강력하다. 예컨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맛기행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화면에 등장하는 전국의 음식점들은 거대한 매체의 영향력을 빌려 제 가게를 알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매스미디어라는 돋보기가 비추는 순간, 평범한 식당이 하루아침에 전국적인 명소로 발돋움하는 광경을 우리는 너무도 익숙하게 보아왔다. 그것은 자본주의 슬롯에서 더 많은 부를 좇는 자연스러운 욕망이자, 언론 권력이 지닌 달콤한 향기일 것이다.
그런데 세상 물정에 어두운 나 같은 은퇴한 노학자가, 그것도 변방의 조그만 지역 신문을 통해 그 대단한 ‘언론 권력의 실체’를 살짝 맛보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얼마 전 나는 경남미디어의 ‘정용우칼럼’ 지면을 빌려 <사봉 구구반점 예찬>이라는 소박한 글을 게재한 적이 있다. 시골 한구석에서 묵묵히 제 맛을 지켜온 노포(老鋪)에 대한 순수한 감탄이자 부부에 대한 헌사였다. 대단한 영향력을 기대하고 쓴 글이 결코 아니었다. 지방의 작은 매체에 실린 글 한 편이 무슨 파장을 일으키랴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디어의 파급력을 과소평가한 나의 치기 어린 실수이자 오판이었다.
일전의 일이다. 아내와 함께 점심이나 먹을 겸 다시 그 가게에 들렀다. 나는 메니에르병을 앓고 있어 사람이 붐비는 식당에 가면 소음의 충돌로 인해 도무지 대화를 이어가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식당에서의 대화는 아내 몫이다. 그날도 식사 후 식비를 계산하려는데 사장 아주머니가 아내에게 나직이 말문을 열면서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할 텐데…”라며 멋쩍게 웃더니, 이내 “아저씨 때문에 우리 영감이랑 나랑 아주 죽을 뻔했다”는 하소연을 쏟아내더란다. 내 글이 나간 직후 보통 때와 달리 엄청난 인파가 사봉면의 그 외진 식당으로 며칠 동안 한꺼번에 밀려들었기 때문이란다.
평생을 자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찾아오는 동네 단골손님들을 대접하며 살아온 노부부에게 그것은 감당하기 힘든 과로였다. 밀려드는 손님들을 감당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다가, 급기야 아주머니와 아저씨 모두 과로로 병원에 입원해야 할 지경까지 갔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가뜩이나 가게를 운영하는 아저씨의 건강 상태가 별로여서 가끔씩 입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주머니의 푸념 아닌 푸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고마움 대신 ‘아차, 내가 실수를 저질렀구나’ 하는 자바카라감이 마음속에 남았다. 그분들은 언론의 힘을 빌려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욕망 따위는 애초에 품어본 적도 없는 이들이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중국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팔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조그만 수입으로 두 식구 먹고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그야말로 안분자족(安分知足)의 삶을 실천하는 정직한 소시민들이었다. 나의 무심한 붓끝이 평온하던 노부부의 소박한 일상을 단숨에 흔들어 놓은 꼴이 되고 말았다. 지방 소도시의 작은 신문이라 할지라도 활자화되어 대중에게 전파되는 순간 엄연한 매체요 권력이었다.
이 우스개 같은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전했더니 모두들 “세상에 그런 가게도 다 있느냐”며, 그 신기한 노포의 음식 맛을 직접 보러 가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리하여 얼마 전, 친구 몇몇과 함께 다시 구구반점을 방문했다. 식사를 마친 후 밥값을 치르려고 계산대로 갔더니 주방 쪽에서 아저씨가 걸어 나오셨다. 그런데 그날따라 아저씨는 하얗고 멋진 셰프 복장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계셨다. 얼굴색도 한결 건강해 보였고 나를 반기는 눈빛에도 활기가 넘쳤다. 아주머니 말씀처럼 큰 고비를 넘기긴 하셨지만, 다행히 병원 신세까지 지지는 않고 무사히 그 고비를 넘기신 모양이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카드를 건네받는 아저씨가 나에게 던지신 말씀이 단 한마디, “어쨌든 고맙다”였다. 참 아이러니한 인사말이었다. 밀려드는 손님 때문에 몸은 힘들었지만 글을 써준 이의 온정에 대한 고마움, 일상의 리듬이 깨져 겪었던 당혹감, 그리고 마침내 그 소동을 이겨낸 자부심까지, 모든 상황을 내포한 인사였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화려한 조명과 거대한 성공을 좇아 질주하는 이들이 수두룩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는 이렇듯 우직하게 제 자리를 지키며 안분지족하는 아름다운 영혼들도 존재한다. 내 설익은 필력이 뜻하지 않게 그분들의 평온한 일상을 뒤흔드는 소동을 낳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 소동을 통해 삶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다시금 배운다. 아저씨의 하얀 셰프 복장 위로 비치던 건강한 미소가 흑백영화 <성공의 달콤한 향기>의 명장면보다 더욱 깊고 징한 울림으로 오래도록 내 마음에 잔상을 남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