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시골에서 꿈꾸는 ‘새로운 상록수’

소멸의 시대를 뚫고 다시 피어날 현대판 상록수를 위하여

by정용우

어제, 그러니까 8월 13일은 1935년 심훈의 소설 《상록수》가 동아일보 당선작으로 발표된 바로 그날이다. 은퇴 후 수십 년간의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돌아와 살아가다 보니, 빛바랜 그 시절 기사 한 줄이 유독 가슴 깊이 파고든다. 90여 년 전 청년 지식인들이 수탈과 가난에 신음하던 농촌을 살리겠다고 헌신했던 이야기를 되새기다 보면, 오늘날 내 눈앞에 펼쳐진 시골 들녘의 절박한 풍경과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세월은 흘렀어도 푸른 소나무의 기상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내가 매일 거니는 이 시골 마을만 해도 현실은 서글플 정도로 엄혹하다. 둘러보면 빈집이 과반을 넘어서고, 조금이라도 농사짓기 까다로운 논밭은 대개 잡풀만 무성한 묵답(默沓)으로 방치되어 있다. 이제는 돈이 되는 특수 작물 재배조차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손도 대지 못하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가슴 서늘한 것은, '지금 계신 마을 어르신 세대가 떠나고 나면 이 동네는 완전히 비어버리겠구나' 하는 극심한 공동화의 예감이다. 1930년대와는 또 다른 의미의 거대한 생존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농촌이 무너지는 것을 단지 시골 사람들만의 불행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밥상이 위협받고 농촌이 소멸하는데 과연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나 식량 안보가 가능할지 깊은 의문이 든다. 기후 위기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일상화된 시대에, 우리 땅에서 식량을 자급하고 생태적 보루를 지켜내는 것은 국가 존립과 직결된 핵심 과제다. 농촌을 지켜내는 일은 단순히 옛정을 추억하는 감성이 아니라, 우리 슬롯 전체의 생존이 걸린 가장 절박한 국가적 대사(大事)인 셈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상록수》 정신은 일방적인 '계몽'을 넘어 청년과 농촌의 '상생'으로 이어져야 한다. 과거 박동혁과 채영신이 시골로 내려가 한글을 가르치던 선구자였다면, 지금 농촌을 찾아오는 청년들은 농민을 가르치는 구원자가 아니라 어르신들의 지혜와 경험을 배우러 온 대등한 파트너다. 평생 흙을 일군 농민의 노하우에 청년들의 감각과 디지털 기술이 어우러지는 쌍방향 연대야말로, 쇠락해 가는 마을에 온기를 불어넣고 청년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열쇠다.


물론 청년들의 의지와 사명감에만 기댈 수는 없다. 시골에 살며 느낀 바, 청년들이 안심하고 들어오려면 가장 먼저 주거 문제부터 해결되어야 한다. 흉물로 방치된 빈집들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해 저렴하게 임대하고, 기본적인 의료와 문화 접근성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아울러 단순 농사를 넘어 로컬 브랜딩, 농촌 관광, 스마트팜 등 다양한 일자리 생태계를 만들고, 농지은행을 통해 청년이 농지를 구하는 문턱을 낮춰주는 실질적인 정바카라 안전망이 튼튼히 깔려야 한다.


박동혁이 고향에서 일으켰던 '농우회'의 정신은 오늘날 '슬롯적 농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르신들과 청년, 그리고 이웃들이 함께 작물을 가꾸며 돌봄과 치유를 나누는 구조는 시골 마을에 큰 활력을 준다. 어르신에게는 소소한 소일거리와 삶의 보람을, 청년에게는 지역에 깊이 뿌리 내릴 계기를 제공한다. 여기에 외지인을 감싸 안는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포용과, 주말농장이나 농촌 유학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관계인구'를 늘려가는 지혜가 더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농촌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시골을 도시에서 밀려난 이들이 들어오는 낙후된 공간이나 시혜적 지원만 바라는 불쌍한 땅으로 보는 시각을 거두어야 한다. 과밀한 도시의 경쟁 속에서 숨이 턱까지 차오른 이들에게, 농촌은 생태적 가치와 삶의 다양성을 만날 수 있는 휴식과 치유의 터전이다. 5도 2촌이나 워케이션처럼 도시와 농촌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조하는 유연하고 풍요로운 공간으로 재조명되어야 마땅하다.


소설 《상록수》에서 푸른 소나무는 모진 추위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희망을 의미했다. 은퇴 후 시골의 한적한 들녘을 바라보며 내가 꿈꾸는 상록수 정신 역시 거룩한 영웅의 탄생이 아니다. 청년들의 도전이 외롭지 않도록 받쳐주는 제도적 울타리, 그리고 원주민 어르신들과 이주 청년들이 서로를 품어주는 기름진 토양이다. 어제 날짜로 마음에 품은 상록수라는 푸른 희망이, 오늘 우리 농촌의 빈자리를 가득 채우는 힘찬 발걸음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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