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내가 올여름 우리 집 화단을 풍성하게 장식해 주었던 ‘엔드리스 섬머’의 꽃을 잘라냈다. 아직 몇 송이의 꽃이 남아 있었기에 나는 “조금 더 두어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그래야 내년에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꽃을 보내야 다시 꽃을 맞이할 수 있다는 자연의 이치를 아내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엔드리스 섬머는 올여름 우리 부부에게 특별한 기쁨을 주었다. 몇 년 전 아내가 사 온 작은 수국 한 포기가 이제는 제법 자리를 잡아 여름 내내 꽃을 피웠다. 사람의 눈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꽃이었다. 풍성한 꽃송이와 고운 색깔은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까지 붙잡을 만큼 화려했다. 그러나 나는 그 꽃 앞에서 조금 다른 장면도 함께 보았다.
어느 날 나비가 날아와 엔드리스 섬머 주변을 맴돌았다. 꽃이 아름답고 풍성하니 먹이를 찾으러 온 것 같았다. 그런데 나비는 꽃 위에 내려앉지 않았다. 잠시 주변을 맴돌다가 이내 다른 꽃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사람에게 아름다운 꽃과 자연에게 가치 있는 꽃이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닐 수 있겠구나. 우리는 꽃의 색과 모양을 보지만, 나비와 벌은 그 안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지를 살핀다.
엔드리스 섬머가 떠난 자리에는 키가 엄청 큰 나무수국 여덟 그루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뿌리를 내린 나무수국의 모습은 어린 수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장엄하다. 커다란 꽃송이가 무리를 이루어 피어난 모습은 마치 한여름 정원의 주인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 꽃들 앞에서도 나는 같은 장면을 다시 보았다. 사람의 눈에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인데, 나비와 벌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대상이 아닌 듯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나비의 꿈을 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흔셋의 노인이 되어 이제는 인간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비의 눈으로 인간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내가 평생 당연하게 여겨 온 것들이 다른 생명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내가 아름답다고 믿었던 것들이 정말 세상 전체의 기준에서도 아름다운 것일까. 나 자신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리로 가보고 싶었다.
나비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가진 오만을 내려놓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랫동안 인간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살아왔다. 꽃도 인간을 위해 피는 것처럼 생각하고, 정원도 인간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비에게 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어떤 꽃은 화려하지만 지나쳐야 할 꽃이고, 어떤 꽃은 소박하지만 머물러야 할 꽃이다.
이 사실 앞에서 나는 나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된다. 혹시 나 역시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정작 세상에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다른 생명의 입장에서 보면 부족한 점이 많을 수 있다. 나비가 꽃을 선택하듯, 삶의 가치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은 자연스럽게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을 떠올리게 했다.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그리고 깨어난 뒤 물었다.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장자가 된 꿈을 꾸는 것인가.” 장자의 나비가 존재의 경계를 묻는 나비였다면, 내가 꿈꾸는 나비는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나비다. 꽃 앞에 선 한 노인이 나비의 시선을 빌려 자신을 바라보는 꿈이다.
어쩌면 정원을 가꾸는 일은 꽃을 키우는 일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눈으로 세상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배롱나무에게서는 기다림을 배우고, 상사화에게서는 만남과 이별의 의미를 배우고, 수국에게서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하나가 아님을 배운다. 그리고 이제 나비에게서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
일흔셋의 나이에 꾸는 나비의 꿈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꿈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이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꿈이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나 자신도 조금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 집 화단에는 꽃들이 피고 진다. 사람은 꽃을 바라보고, 나비는 꽃을 지나간다. 그러나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조용히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