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특별한 축가

by정용우

지난 주 토요일, 오랜만에 옷장을 열어 번듯한 정장을 꺼내 입고 부산행 길에 나섰다. 외가 쪽 4촌 형님의 아들, 그러니까 나에게는 5촌 조카의 아들이 백년가약을 맺는 날이었다. 사실 얼마 전 모임에서 우리 외가 쪽의 ‘소식통’ 역할을 하는 4촌 여동생이 내게 다가와 이 결혼식 소식을 ‘살짝’ 귀띔해 주었을 때,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히 가야지!” 하고 화답했었다. 여동생이 조심스럽게 소식을 전한 속내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촌수가 살짝 멀어진 탓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현재 메니에르씨병을 앓고 있어 장거리 외출이 여의치 않은 건강 상태임을 배려한 까닭이었으리라.


그럼에도 내가 부산행을 달갑게 자처한 데는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한 따뜻한 애정과 존경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예기치 못한 사별(死別)을 겪으신 후, 홀로 딸과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내기 위해 평생을 바치신 형수님의 가없는 헌신의 세월을 익히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거친 세파 속에서도 묵묵히 중심을 잡고 두 남매를 참되게 길러내신 그 고결한 여정은 그 어떤 훈장보다 빛나는 것이었다. 내게 이번 부산 행차는 단순히 젊은 부부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자리를 넘어, 모진 풍파를 견디고 마침내 손자의 당당한 출발을 지켜보게 된 존경하는 형수님에게 진심 어린 경의와 축하의 박수를 보내기 위한 여정이었다.


결혼식 초반부는 여느 예식과 다름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후반부 축가 순서에 이르렀을 때, 예식장은 여타 결혼식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아주 특별하고 감동적인 무대로 변모했다. 보통의 결혼식에서 신랑의 아버지가 아들 부부를 위해 축가를 부르는 모습은 간혹 볼 수 있는 훈훈한 장면이다. 이날도 역시 점잖은 신랑 아버지가 먼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그것으로 끝날 줄 알았으나, 아버지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정장 매무새를 가다듬은 신랑이 마이크를 이어받는 것이 아닌가. 수많은 결혼식을 다녀보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연이어 바통을 터치하듯 축가를 부르는 광경은 내 생전 처음 접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난청을 유발하는 메니에르씨병 탓에 나는 흘러나오는 축가의 음절과 가사를 온전하게 소화해내지 못했다. 귀끝을 스치는 소리는 희미했지만, 장내를 가득 채운 온기와 두 부자가 뿜어내는 가창력, 그리고 깊은 감정이입의 에너지는 내 가슴으로 고스란히 밀려들었다. 얼마나 노래 실력이 탁월하고 자신감이 있었으면 부자가 연이어 무대에 섰을까 싶었다. 노래가 끝나는 순간, 식장은 그야말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로 뒤덮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 묘한 감동의 잔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여러 결혼식에서 귀동냥으로 들어보아 리듬은 어렴풋이 알겠는데, 도저히 가사와 제목이 명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다음날 형수님께 문자를 보내어 어제 본 축가 무대의 감동을 전하며 곡명을 여쭈었다. 형수님은 가수 김동률의 ‘감사’라는 곡이라고 일러주셨다. 아버지가 1절을 부르고, 아들이 그 뒤를 이어 2절을 부른 것이라 했다.


곧바로 유튜브를 켜고 노래를 찾아 다시 들었다. 화면 위로 흐르는 가사를 한 글자 한 글자 눈과 귀로 꼭꼭 씹어 읽어 내려갔다. ‘눈부신 햇살이 오늘도 나를 깨우면, 내가 살아있음을 그대에게 감사해요.’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그 노랫말들이 비로소 가슴에 웅장하게 와닿았다. 꼼꼼히 이해해 본 가사의 행간에는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선 숭고한 가족의 서사가 숨어 있었다.


1절을 부른 아버지의 목소리는, 홀로 자신들을 지극한 사랑과 헌신으로 키워내고 마침내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아 계신 어머니(나의 형수님)에게 바치는 절절한 ‘헌사(獻詞)’였으리라. 그리고 2절을 이어받은 신랑의 목소리는 평생을 지탱해 준 부모님에 대한 감사이자, 앞으로 평생을 함께할 아내에게 바치는 약속의 노래였을 것이다. 한 편의 축가 속에 3대를 관통하는 삶의 궤적과, 고난을 이겨낸 가족의 위대한 승리가 녹아들어 있었던 셈이다.


가사의 내용처럼, 모진 겨울을 지나 마침내 만개한 그들 가족의 앞날에 늘 사랑과 감사가 강물처럼 넘쳐나기를 마음 깊이 기원해 본다. 귀가 어두운 노인에게 잊지 못할 뜨거운 울림과 즐거움을 선물해 준 그날의 멋진 부자(父子) 가수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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