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범어사에서 받은 약 한 첩

by정용우

부산 범어사를 다시 찾은 것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근 40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 성업공사(현 한국자산관리공사) 부산지사에 근무할 때다. 몇몇 친한 동료 직원들 가족과 이곳으로 여름 나들이를 했다. 고즈넉한 고찰 옆으로 숲에 뒤덮인 시원한 계곡이 있어 아이들 물놀이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아이들이 어찌나 즐겁게 노는지 우리는 거의 해질 녘까지 머무르면서 여름 하루를 즐겼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일 하나. 당시 초등학교 다니던 아들이 물이 흘러내리는 바위를 미끄럼틀로 삼아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얼마나 많이 했던지 입고 놀던 빤스의 엉덩이 부분이 두 눈처럼 뻥 뚫린 정도였다.


그 이후는 무슨 일로 그렇게 바빴던지 방문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40년 만에 기회를 잡았다. 창원에서 치과의원을 경영하는 후배의 어머니가 부산에 사셨는데,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기에 조문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나와 아내는 부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부산으로 향했다. 범어사를 방문한 후 조문하면 빈소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 아래 길을 잡았다.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범어사를 찾아가는데 마침 점심을 먹을 시간인지라 식당을 찾았으나 식당이 보이질 않았다. 아마 예전에 우리가 다녔던 길이 아닌 새로 조성된 길을 안내한 모양이다. 범어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주차권을 파는 안내원에게 물어봤다. “어찌 오는 길에 식당이 없네요. 어떻게 하면 식당에 접근할 수 있나요?” 그랬더니 안내원이 이야기한다. “식당은 다른 길로 제법 많이 내려가야 합니다. 마침 범어사 경내에서 무료급식을 1시까지 제공하니 이로써 점심을 해결하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면 되겠다 생각하고 무료급식소를 찾았다. 식당 홀이 상당히 넓고 이용하는 사람도 엄청 많았다. 하여 우리 부부는 식사가 제법 괜찮은 모양이라고 상상하며 식판을 받아들고 배식 대열에 참여했다. 그런데 배식을 해주는데 아차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살이 빠지는 당뇨약을 복용하는 내게, 영양분을 골고루 갖춘 고형의 식사, 특히 체중과 기력을 유지해 줄 육류 섭취는 일상을 버텨내기 위한 생존의 문제였다. 한 끼만 부실하게 먹어도 몸무게가 줄고 곧장 힘이 빠져버리는 몸 상태를 알기에, 건강관리에 허점이 생길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이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이 일었다. 아내는 금방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이왕 이렇게 된 거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자”고 했다. 사실 또 한 번 생각하면 무료급식인데다 부처님을 모시는 사찰에서 제공된 음식인지라 식단이 좋니 나쁘니 따지는 것도 적절하지 못한 태도임을 알고 있는 나이기에 ‘이게 오데고?’ 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마쳤다. 더군다나 배식대 앞에 붙어 있는 ‘공양게’는 나의 갈등을 삽시간에 사그라지게 했다.


-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며 진리를 실천하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우리 부부는 식사를 마친 후 경내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경내를 둘러본 후 우리는 다시 옛 추억을 더듬으며 사찰 옆 계곡을 찾았다. 앞에서 내가 이야기했던 계곡에서의 추억을 되뇌어 보고 싶었기에. 그러나 계곡은 너무 달라졌다. 새로이 건물들을 짓느라 계곡 주변의 부지가 대지로 조성되어 버렸으며 계곡 자체도 인공의 흔적인 조경으로 다듬어져 있어 옛 추억을 건져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였다. 40년 만에 찾은 범어사는 73세 노인의 추억을 되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현대화되어버렸다. 시간의 흐름은 산사마저도 그대로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범어사 방문을 마친 우리는 좋은안강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조문을 마친 후 후배 부부와 우리 부부는 식탁에 마주 앉아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면서 점심의 허기를 채우고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기 위해 이 음식 저 음식을 허겁지겁 삼킨다. 그러면서 살 빠지는 당뇨약을 복용하는 나이지만 공양게 덕분에 무사히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는 이야기, 사찰 경내의 현대화된 건물, 그리고 주변 계곡의 변화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해서 부산 범어사 방문은 나에게 있어서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40년 전의 계곡은 사라졌고 사찰은 변했지만, 범어사는 그곳을 찾은 노년의 중생에게 공양게라는 묵직한 가르침을 소리 없이 건네고 있었다. 비록 추억은 깨어졌을지언정, 내 남은 삶의 태도를 다잡아 줄 귀한 약 한 첩을 받아 가니, 이번 걸음이 아주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차창 밖 풍경 위로 조용히 겹쳐 흘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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