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라는 거대한 여과기 속에서 국회의원 입법정바카라보좌관으로 4년을 보냈던 기억은, 내 생애 가장 뜨겁고도 소란스러웠던 한때로 남아 있다. 날마다 회의실 문틈으로 쏟아지는 법안과 정바카라들, 그리고 그 이면에서 요동치던 권력의 역학관계는 주변의 모든 이성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았다. 그곳은 명분이라는 화려한 포장지 속에 철저한 실리와 생존 계산이 얽혀, 서로를 향해 거친 고함을 질러대던 소리의 전쟁터였다.
세월이 흘러 일흔셋의 노인이 된 지금, 나는 47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의 300평 남짓한 정원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바카라을 읽고 글을 쓰며 하루를 소일한다.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앉은 이 소박한 낙원에서, 나는 매일 아침 이슬이 싱그럽게 맺힌 잔디밭을 거닐며 풀과 나무들이 건네는 말 없는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억지로 밀어내거나 가로막지 않아도 제 갈 길을 가는 대자연의 순리가 비로소 마음에 들어온다.
엊그제, 지인이 보내온 '여권 내 갈등설'이라는 낯선 정치권 소식을 접했다. 오랫동안 여의도 뉴스를 멀리해 온 터라 대관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들여다보았더니, 결국 야당 내부의 주도권 싸움이 그러하듯 여당 역시 권력의 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해묵은 줄다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임기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마무리하려는 '현재의 권력'과, 다가오는 선거 정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민심을 핑계로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미래의 권력'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이었다.
집안의 기강을 세우려는 엄한 가장과 독자적인 살림을 차리려는 후계자 사이의 불협화음은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정치공학적 계산이다. 여의도를 떠난 지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인간이 만드는 권력의 문법과 탐욕의 지도는 어쩌면 이토록 단 한 치도 변함이 없는지 씁쓸한 실소가 나왔다. 남을 딛고 올라서서 꺾어야만 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그곳의 생리는 시대와 인물이 바뀌어도 언제나 '그게 그것인' 소란스러운 소음을 동반할 뿐이다.
정치권의 요란한 갈등 탓에 메말라진 마음을 달래려 정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7월의 정원은 그야말로 지천이 수국이다. 밤새 내린 이슬을 머금고 소담스럽고 하얀 빛깔로 피어난 수국의 무리가 정원 곳곳을 환하게 밝히며 한여름의 길목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나의 시선은 지금 눈앞에 화려하게 펼쳐진 수국 너머, 아직 꽃을 피우지 않은 채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주자들에게로 향한다.
수국이 제 몫의 아름다움을 다하고 지고 나면 바통을 이어받을 닥풀꽃과 맨드라미는 이미 부지런히 호미질을 해둔 덕에 모종 이식을 무사히 마쳤다. 새 흙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녀석들의 푸른 잎사귀가 대견하다. 정원 한편의 부용화는 세상을 향한 성급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벌써 초록빛 줄기 끝에 단단한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푸른 잎 하나 보이지 않는, 얼핏 보면 죽은 것처럼 텅 빈 흙바닥이 눈에 들어온다.
그 정적의 땅속 깊은 곳에서는 상사화와 꽃무릇이 자신들의 차례를 위해 눈물겨운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잎이 진 후에야 꽃이 피어 평생 서로를 그리워만 해야 하는 기구한 운명의 꽃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오직 정직한 꽃대를 밀어 올리기 위해, 어둡고 축축한 흙 속에서 치열한 준비 작업을 소리 없이 해내고 있음에 틀림없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이어지는 식물들의 정직함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반면, 이 작은 정원의 식물들은 결코 서두르거나 소란을 피우며 이웃을 밀쳐내지 않는다. 수국은 자신이 떠나야 할 때를 알아 추하게 미련을 두지 않고, 부용화는 앞선 꽃의 화려함을 시샘하지 않으며 오직 제 속도대로 차례를 기다린다. 이들은 서로 소리 내어 싸우지 않고도, 자연이 정해준 거대한 약속 속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피고 진다. 여의도 시절에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목소리를 높이는 '소리'에 있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흔셋의 나이에 정원에 서서 깨닫는다. 정작 이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다음 계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땅속에서 숨소리를 삼키는 정원의 '침묵'이었다는 것을.
정치권의 갈등은 계절이 바뀌면 또 다른 형태의 바람이 되어 부질없이 불어오고 또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 허망한 소음에 흔들리며 마음을 낭비하기보다, 정원의 깊은 초록을 바라보며 나를 찾아온 손주들의 맑은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 소박한 일상이 비교할 수 없이 고귀하다. 오늘도 나는 요란한 세상의 소리를 등 뒤로 두고, 다가올 꽃들이 가르쳐주는 치열한 침묵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다시 정원의 흙 위로 천천히 걸어 나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