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국수와 소바

의병의 고장에서 '소바'를 생각하다

by정용우

멀리 서울에서 대학 동창 친구 두 분이 내가 사는 이곳 지수로 내려왔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맞이하는 남도 여행길이다. 오랜 지기들과 함께하는 여정은 늘 설레는 법.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들뜬 기분이 되어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오전의 첫 목적지는 함안 능가사였다.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고사(古寺)의 고즈넉한 정취를 마음에 담고, 이어 인근 강주마을로 향해 들판을 가득 메운 해바라기의 노란 물결을 참관하는 것으로 오전 일정을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점심은 창녕 부곡온천 초입에서 든든하게 해결한 뒤, 가까운 영산 연지와 만년교를 찾았다. 수려한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인 만년교는 남산호국공원과 바로 맞붙어 있어, 우리는 자연스럽게 호국공원의 경내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영산 남산호국공원은 우리 역사 속 굵직한 국란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영산 지역 선열들의 호국정신과 애국 충절을 기리는 깊은 뜻이 담긴 역사 공원이다. 임진왜란, 3·1 독립운동, 그리고 6·25 전쟁이라는 대한민국의 3대 국란(國亂)과 관련된 생생한 현장과 기념비를 모두 품고 있어 걷는 걸음마다 묵직한 역사적 의의가 전해져 왔다.


특히 그중에서도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장엄하게 솟아오른 임진왜란 호국충혼탑과 거대한 화왕산 승전도였다. 백색 고리 형태의 충혼탑 앞에서 마주한 이름은 바로 신초(辛楚) 장군. 신초 장군은 임진왜란 초기 영산 박진 전투와 정유재란 당시 화왕산성 전투에서 크게 활약했던 이 지역 출신의 호국 영웅이자, 홍의장군 곽재우의 가장 든든한 휘하 장수인 조전장(助戰將)이었다. 이름 없는 무명 의병들과 함께 낙동강 보루를 사수했던 그의 뜨거운 활약상을 전해 듣자, 가슴 한구석에서 묘한 뜨거움이 차올랐다.


신초 장군의 숭고한 발자취를 보고 나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발길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 총지휘관이었던 곽재우 장군을 기념하는 의령 충익사와 의병박물관으로 이어졌다. 충익사는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장군과 그 휘하 장수 17인, 그리고 이름 없는 수많은 의병들의 위패를 모신 엄숙한 사당이었다. 바로 옆 의병박물관에서 장군이 직접 불었던 사자 가죽 장식의 뿔나팔과 장검을 실물로 조우했을 때의 감동은 필설로 다하기 어려웠다.


충절의 여정은 한우산 전망대로 향하는 길에서도 계속되었다. 산 정상까지 차로 오르며 확 트인 의령의 전경을 한눈에 담는 호사도 좋았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정상에 이르는 도로 양옆으로 꼿꼿하게 뻗어 있는 소나무 가로수를 보기 위함이었다. 굽힘 없이 푸른 소나무야말로 이 충절의 고장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상징적인 가로수가 아닌가 싶어, 차창 밖을 바라보는 내내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이 아름다운 여정의 끝자락에서 불거졌다. 나는 외지에 사는 가족이나 지인이 의령을 방문하면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으레 별 생각 없이 ‘의령소바’를 찾곤 했다. 지역을 대표하는 워낙 유명한 향토 음식점인 데다, 방송사마다 맛집으로 지정한 가게다. 오늘도 평소처럼 의령전통시장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단골 음식점인 ‘의령소바’로 친구들을 안내하려 입에 올렸다.


그때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친구 한 명이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의병의 고장까지 와서 저녁으로 ‘소바’를 먹는다는 게 조금 어색하지 않은가?”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친구는 ‘소바’라는 말이 메밀국수를 뜻하는 명백한 일본어임을 나직하게 짚어주었다. 아차 싶었다. 매일 무심히 쓰고 부르던 대중적인 식당 이름 뒤에 숨은 언어의 장벽을, 그리고 ‘이름이 가진 무게’를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내 무개념이 부끄럽게 들통나는 순간이었다.


다른 날도 아니고, 바로 오늘 우리는 창녕과 의령의 산천을 돌며 국란 속에서 일본 왜적에 맞서 목숨을 바친 신초 장군과 곽재우 장군, 그리고 수많은 의병 선열들을 만나 뵙고 오는 길이 아니었는가. 그 장엄한 호국의 기운을 가슴에 담고 나온 상황에서 ‘의령소바’에서 저녁을 먹는 다는 것은, 조상들에게 참으로 면목이 서지 않는 모순된 행위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우리는 즉시 발길을 돌려 ‘의령소바’라는 간판을 포기하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정경한정식’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펼쳐 든 그곳의 메뉴판에는 다행히도 정갈한 우리말, ‘메밀국수’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멀리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의 날카롭고도 사려 깊은 지적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도 조상들의 충절을 기리는 여행 중에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면목 없는 행동을 저지를 뻔했다. 언어는 의식을 지배하고, 의식은 행동을 만든다. 의병들이 피로써 지켜낸 이 강산 위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 한마디의 무게를 다시금 깊이 되새겨본 참으로 뜻깊은 남도의 저녁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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