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손주들의 장난감과 운동기구가 늘어나면서 정들었던 사랑채를 정리했다. 꼭 보관해야 할 바카라들은 별채 창고로 옮기고, 덜 필요한 바카라은 이번 기회에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 바카라을 덜어내는 일은 지난 삶의 한 부분을 비워내는 것 같아 묘한 아쉬움이 남았다.
어느 고물상에 연락하여 내 바카라들을 가져가라고 알려줬다. 요즘 마침 전쟁으로 인해 폐지 수집이 그런대로 수지를 맞추는 모양이었다. 연락을 받자마자 아주머니 한 분과 삼륜차 운전을 맡은 아저씨 한 분이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왔다. 바카라을 차 짐칸에 실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운전하는 아저씨가 바카라 싣는 작업을 돕지 않아 처음에는 의아해했으나, 알고 보니 다리가 부실한 장애인이었고 아주머니는 장애인들을 돌보는 바카라임봉사자였다.
버리는 바카라 분량이 꽤 많았다. 삼륜차 짐칸을 가득 채울 만큼 바카라더미가 쌓이자 아주머니가 나직이 말씀하셨다. “바카라값 많이 들었겠네요.” 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노라고 했다. 그 바카라 속에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전권이 포함되어 있었다. 젊었던 시절 몇 날 며칠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워 읽었던 작품이다. 내 청춘의 한 페이지가 그렇게 삼륜차에 실려 멀어져 갔다.
그러고 며칠이 지난 후 서울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 이른바 버킷리스트라며 섬진강을 둘러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즉시 이곳 남도로 내려오라 하였고, 드디어 서울 친구 두 분과 함께 남도 여행길에 올랐다. 이번 여행의 주 목표는 섬진강의 맑고 깨끗한 물과 모래사장, 그리고 이 강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유명 관광지들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우리는 금오산에 설치되어 있는 하동케이블카를 제일 먼저 방문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남해 바다와 섬진강 하류 전경을 감상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날이 하필 정기점검으로 인한 휴무였다. 아쉽지만 우리는 허허 웃으며 본격적인 섬진강 여행을 시작했다.
강변을 따라 펼쳐져 있는 도로를 기분 좋게 달려 하동송림에 도착했다. 보통 소나무 숲이라 하면 바닷가의 거친 방풍림을 떠올리지만, 하동송림은 맑은 강변을 배경으로 조성된 아늑한 공원이다. 거친 파도 소리 대신 잔잔한 강물 소리가 흐르고, 백여 년 된 소나무들이 만든 짙은 그늘은 지친 마음에 평온한 안식을 준다. 은은한 솔향과 눈앞에 펼쳐진 부드러운 강모래의 정취는 오직 섬진강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장점이다.
하동송림을 떠나 우리는 스타웨이하동 전망대에 도착했다. 친절하고 아름다운 두 자매가 운영하는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받아 들었다. 섬진강 수면에서 고도 180미터 높이의 산자락에 건설된 스타웨이 전망대는 주변 경관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별 모양으로 생긴 길을 걸으며 푸른 섬진강 물줄기와 평사리 들판의 전경을 조망하니 가슴이 시원하게 열렸다.
이곳에서 조금 산비탈을 타고 내려가면 소설 속 삶의 현장인 최참판댁이 나온다. 그곳에 설치된 대하소설 ‘토지’ 줄거리가 요약된 안내판(1부-5부)을 숙독한 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박경리문학관으로 발길이 이어졌다. 이곳에서 우리는 본격적인 문학 탐방에 접어들었다. 친구는 버킷리스트 실행자답게 꼼꼼하게 이곳저곳을 돌아보았고, 오랜 세월의 이야기를 머금은 설명 안내판 하나 놓치지 않고 유심히 읽어 내려갔다.
박경리문학관 안 유리박스 속에 전시된 선생의 친필 원고들을 읽으며 사진으로 남겼다. 그중 내가 평소 제일 좋아하는 구절의 친필원고도 소장되어 있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고단했던 삶을 정리하며 남기신 마지막 유작 시의 구절이다.
문장을 가만히 읊조리는 동안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울컥임이 치밀었다. 선생에게 ‘버리고 갈 것’이란 평생을 짊어진 문학이라는 거대한 멍에이자 인간적 고뇌의 잔해들이었을 것이다. 그것들을 모두 내려놓는 순간의 영혼의 자유를 선생은 ‘홀가분하다’는 단 몇 마디로 표현하셨다.
올해로 일흔셋을 맞이한 나의 삶이 그 문장 위로 겹쳐 보였다. 나 역시 얼마 전 사랑채를 정리하며 평생 모아둔 청춘의 지식들을 미련 없이 실어 보내지 않았던가. 젊은 날에는 더 많이 채우고 소유하려 버둥거리며 살았다. 그러나 인생의 황혼녘에 서고 보니, 결국 삶이란 끊임없이 채워 넣는 자루가 아니라 하나씩 비워내야 하는 투명한 유리병임을 깨닫게 된다.
73세라는 나이는 무언가를 새로 얻기보다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하는 숙연한 계절이다. 내 기억이 담긴 ‘토지’ 바카라을 보낸 것도 선생의 깨달음을 닮아가기 위한 조용한 비움의 실천이었으리라. 마음의 욕망을 비워낼 때 비로소 섬진강의 맑은 물소리가 귀에 들어오고 평사리의 푸르름이 눈에 온전히 담긴다. 남해 바다를 향해 도도히 흘러가는 저 섬진강 물줄기처럼, 우리의 남은 삶도 그렇게 홀가분하게, 흘러가야 할 곳으로 묵묵히 흘러갈 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