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병의 힘으로

by정용우

얼마 전 발표한 나의 졸고 ‘어쩔 수가 없다’에서 고백했듯, 나는 당뇨병 환자다. 당뇨라는 고약한 불청객은 내가 좋아하는 식품을 거의 다 멀리하라고 다그친다. 합병증에 대한 공포가 주는 육체적 고통도 크지만, 평생 즐겨 오던 음식들을 눈앞에 두고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금욕의 고통 또한 만만치 않다. 그날도 그랬다. 당뇨 환자에게는 그야말로 금기 식품 중의 금기인 짜장면 한 그릇을 앞에 놓고,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다가 끝내 그 달콤하고 고소한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던 이야기를 고백하며 멋쩍게 웃었던 기억이 선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짜장면이 아니라 소주 한 병이다. 이 소주 역시 주치의의 엄격한 권유에 따라 한 방울도 조심하며 절제를 거듭해 오던 터였다. 사건의 발단은 엊그제 토요일에 있었던 나의 부계 4촌 부부 모임이었다. 둘째 동생이 산청 동의보감촌 내에서 ‘빵파는 갤러리’라는 아담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이 비교적 모이기 쉬운 최적의 장소로 여겨 그곳을 약속 장소로 잡았다. 동생은 오랫동안 몸담았던 교수직을 그만둔 후, 자신의 전공을 살려 직접 맛 좋은 빵을 만들어 파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취미로 시작했던 화각(華角) 분야에서 어느덧 장인의 반열에 오른 덕에, 매장 한편에서는 정성스레 만든 화각 작품들을 제작하고 전시하며 판매도 겸하고 있는 재주꾼이다.


오후 2시경이 되자, 약속이라도 한 듯 전국 각지에서 부계 4촌들이 부부 동반으로 속속 몰려들었다. 모두 모이니 무려 24명이라는 대가족이었다. 돌아가신 나의 조부모께서는 슬하에 1남 4녀의 자녀를 두셨다. 본래 내 위로 사촌 형님이 한 분 계셨으나, 애석하게도 젊은 시절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어느덧 내가 이 일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연장자가 되었다. 둘째 동생 부부가 정성껏 내어준 달콤한 다과와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가족 이야기를 엮어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사실 사촌 동생들과는 평소에 전혀 안 보고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개 혼사나 상가(喪家) 같은 번잡한 경조사 자리에서나 잠깐 얼굴을 마주치다 보니, 그저 바쁘게 인사만 나누고 헤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번 모임은 달랐다. 온전히 우리들만의 온기를 나누며 가족들의 소소한 근황을 묻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은 그 자체로 커다란 축복이었다.


차담을 마친 우리는 동의보감촌 경내를 천천히 산바카라하며 다정한 대화를 이어갔다. 마침 오늘 모임을 세심하게 기획하고 진행한 막내 동생은 조경학 교수다. 막내가 앞장서서 걸으며 경내의 나무 한 그루, 돌 하나에 얽힌 조경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놓는데, 그 설명이 어찌나 유익하고 흥미진진한지 산바카라길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이야기하며 초여름의 녹음을 즐긴 후,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주차장 인접 음식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진짜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음식점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들 사이로 초록색 소주병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며칠 전 짜장면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이성을 잃고 갈등하던 바로 그 곤혹스러운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 눈빛의 흔들림을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평생을 함께해 온 아내였다. 아내는 내 기색을 살피더니 이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놀려댔다. “당신, 또 어쩔 수가 없겠네.”


아내의 말대로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모처럼 만난 사촌들과 정답고 즐거운 대화에 몰입하느라, 그리고 꽤 넓은 경내를 걸으며 산바카라하느라 목은 이미 갈증을 느끼고 있었고, 몸에는 기분 좋은 피로감이 살포시 얹혀 있었기 때문이다. 갈증과 피로가 교차하는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술’의 어원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떠올랐다. 술의 유래에 대해서는 학계에 수많은 설이 존재하지만, 나는 지금껏 국어학자인 고(故) 서정범 교수께서 생전에 들려주셨던 독특한 어원을 기억하며 애호해 왔다. 서 교수님은 ‘술’이라는 단어가 다름 아닌 ‘숫놈의 불알’에서 연유했다고 말씀하셨다. ‘수’와 ‘불’이 합쳐져 오랜 세월 동안 발음의 변천을 거듭한 끝에 오늘날의 ‘술’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민간어원설에 불과할지 모르나, 술을 좋아하는 나 같은 이에게는 참으로 멋있고 호기기 넘치는 견해로 여겨졌다. 수컷의 강인한 생명력과 에너지가 담겨 있으니, 술을 마시면 몸의 피로가 가실 뿐만 아니라 온몸에 없던 힘도 불끈 솟아난다는 논리였다.


그 유쾌한 이야기가 떠오르는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듯 나도 모르게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고 쭉 들이켰다. 짜릿한 알코올이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순간, 기막힌 해방감이 밀려왔다. 몇 잔을 연거푸 받아 마시니 신기하게도 조금 전까지 나를 누르던 피곤함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온몸에 새로운 에너지가 솟구치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이 신비로운 술의 힘 덕분이었을까. 형제들 간의 대화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정답고 걸판지게 흘러갔다.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고 아쉬울 정도로 자리는 무르익었다.


이윽고 모임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고, 대가족의 큰형으로서 내가 마지막 인사말을 할 차례가 되었다. 소주 한 병이 주는 흥겨운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는 여느 때보다 유쾌하고 활기차게 마이크를 잡았다. “기름값도 비싼 이 불경기에, 오직 형제간의 정 하나로 전국 각지에서 이렇게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달려와 준 동생들 부부에게 진심으로 반갑고 고맙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술기운을 빌려 약간의 과장이 담긴 너스레까지 떨었다. “오늘 여기 모인 여러분의 빛나고 건강한 얼굴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마주하고 있으니, 신기하게도 이미 세상을 떠나신 우리 부모님들과 고모님들의 그리운 얼굴이 겹쳐 보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핏줄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술 힘을 받아 열정적으로 쏟아낸 나의 진심 어린 마지막 인사말에, 좌중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식사 자리는 그렇게 감동과 흥겨움 속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우리는 다시 내일의 평범한 일상과 삶을 위해 각자의 길로 나설 준비를 했다.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나니, 광장에는 우리 형제 3인 부부와 운전을 맡아줄 기특한 조카 한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든든한 조카가 곁에 있으니, 멀리 서울까지 올라가야 하는 막내 동생 부부의 귀갓길 운전 걱정은 한시름 놓아도 되겠다 싶었다. 그냥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웠던 나는 슬그머니 새로운 제안을 던졌다. “우리,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우니 시원한 맥주 딱 한 잔만 더 하고 가세.”


그러나 해가 저물자 산속의 동의보감촌 음식점 광장에는 어느새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겨 버렸고, 야속하게도 더 이상 문을 열어 둔 술집이 보이지 않았다. 고요한 정적만이 광장을 감돌 때쯤, 둘째 제수씨가 구원의 목소리를 냈다. “형님, 아주버님, 걱정 마세요. 우리 가게에 가면 시원한 맥주가 아주 많이 준비되어 있어요.” 그 말에 나의 귀가 번쩍 뜨였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다시 동생네 ‘빵파는 갤러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위가 조용한 동생의 가게 안에서 우리 친형제들은 서로의 투박한 손을 꼭 맞잡았다. 시원한 맥주잔을 부딪치고 주고받으며,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형제의 정을 마음껏 나누었다. 그렇게 아쉬움이 없을 만큼 정을 나눈 다음에야 우리는 비로소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돌이켜보면 의사의 경고를 어기고 마신 철없는 소주 한 잔이었다. 그러나 그 ‘어쩔 수가 없어’ 마신 소주 한 잔은 단순히 몸에 해로운 알코올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원해지기 쉬운 일가친척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었고, 고단한 삶의 피로를 씻어주는 명약이었으며, 메말라가는 일상에 평화와 구원을 선물해 준 행복의 마중물이었다. 소주 한 병의 힘으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하고 충만한 행복감을 맛본 하루를 보냈다. 여전히 갈 길은 멀고 당뇨의 위협은 지속되겠지만, 내 곁에 이토록 사랑하는 형제들이 있고 그들과 나눌 정겨운 술 한 잔이 있다면, 인생은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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