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장아찌를 만들면서

by정용우

요즘 우리 집은 매실과 전쟁 중이다.

며칠 전 아내가 시장에서 매실 두 박스를 사 왔다. 이미 한차례 작업을 마친 상태였는데 또 사 왔다. 박스를 내려놓는 모습을 보니 당분간은 매실과 씨름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실장아찌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만드는 과정까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매실을 씻고 꼭지를 떼어내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진짜 어려운 작업은 과육과 씨를 분리하는 과정이다. 매실 하나하나를 칼로 깎아 씨를 발라내야 한다. 말은 쉽지만 해보면 보통 일이 아니다.


아내는 이 작업을 몇 날 며칠 계속한다. 손목도 아플 것이고 허리도 아플 텐데 묵묵히 해낸다. 나는 옆에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가끔 일을 거든다. 그러다 며칠 전 사고가 났다.


그날 나는 화단 정리를 했다. 꽃양귀비가 꽃을 다 피워낸 후라 꽃대를 뽑아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자라난 잡초를 뽑아내는 등 닥풀꽃 모종을 이식할 준비 작업을 한 셈이다. 일을 마친 뒤 곧바로 매실 작업에 합류했다. 그런데 칼질을 하다가 그만 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피가 배어 나오자 아내가 한마디 했다.

“그러게. 화단 일로 힘 다 빼놓고 칼질을 하니 그렇지.”

농담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젊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집중력도 체력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몸이 피곤하면 손끝도 둔해진다.


상처를 치료하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힘들게 할 필요가 있을까?’

요즘은 매실 씨를 빼는 기계도 있고, 더 쉽게 작업하는 방법도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나는 인공지능에게까지 물어보았다. 혹시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쉬운 방법은 있다. 하지만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는 다 알고 있어. 그리고 씨 빼는 기계도 있어.”

역시 그랬다. 아내는 이미 여러 방법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의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삭한 맛이 안 나.”

결국 맛을 얻으려면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생각해 보니 세상 일이 다 그렇다.

농사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다. 편한 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수고를 덜어낸 만큼 결과도 달라진다.


그렇게 어렵게 만든 매실장아찌 일부는 지인들에게 나누어 준다. 해마다 보내드리면 모두들 맛있다고 한다. 어떤 분은 시중에서 파는 것과는 다르다고 하고, 어떤 분은 아껴 먹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내 표정이 밝아진다.


처음에는 내가 유별나게 장아찌를 좋아해서 만드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곁에서 오래 지켜보니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정성껏 만든 음식을 나누고, 그것을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이 더 큰 모양이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을 좋아한다.

특히 자신이 애써 만든 결과물에 대한 칭찬은 더욱 그렇다.

생각해 보면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글을 쓰고, 농사를 짓고, 꽃을 가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람이라는 것은 결국 타인의 기쁨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니까.


오늘도 아내는 매실을 손질하고 있다.

박스 속 매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솔직히 말하면 또 손가락을 다칠까 봐 겁도 난다.

그래도 조금 뒤에는 아내 옆에 앉아 매실 몇 알쯤은 다시 깎게 될 것 같다.

내년 이맘때쯤 누군가에게서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오늘의 수고쯤은 금세 잊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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