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니 퀸의 기일에 즈음해서

by정용우

오늘은 배우 안소니 퀸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아침에 우연히 그의 기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문득 그의 영화들이 떠올랐다. 《그리스인 조르바》, 《길》, 《25시》, 《사막의 라이온》, 《나바론 요새》…. 하나같이 오래전에 보았던 작품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의 장면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영화를 보던 시절의 내 모습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안소니 퀸의 팬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길》, 《25시》 같은 그의 대표작들은 물론이고, 평소 좋아하던 여러 고전영화들을 비디오와 CD로 하나둘 모아 왔다. 청계천 시장을 드나들며 어렵게 구한 작품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모은 영화들이 어느새 150편 남짓 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영화 한 편 보는 일이 지금처럼 쉽지 않았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인터넷도 없었고 스트리밍 서비스는 더더욱 없었다. 영화 잡지나 신문에서 작품 소개를 읽고는 언젠가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 무렵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서울 청계천 시장은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다. 각종 전자제품과 음반, 비디오가 모여 있었고, 발품만 팔면 의외의 작품을 발견하기도 했다. 마음에 두고 있던 영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가곤 했다. 손에 넣기 어려운 작품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지금 생각해도 생생하다.


그중에서도 중국 영화 《인생》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영화를 얼마나 보고 싶었던지 수소문 끝에 어렵게 구입했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산 셈이다. 당시에는 그것 말고는 영화를 볼 방법이 마땅치 않았으니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인생》을 다시 보게 되었다. 클릭 몇 번이면 곧바로 재생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문득 웃음이 나왔다.

‘내가 그때는 왜 그렇게까지 집착했을까?’


하지만 곧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돈을 주고 산 것은 단순히 영화 한 편이 아니었다. 영화를 찾아다니던 열정이었고,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이었으며, 좋은 영화를 만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러니 그 시절의 집착을 지금 와서 웃을 수는 있어도 후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집에는 지금도 비디오 재생기 두 대와 CD 재생기 두 대가 있다. 가족들은 오래전부터 버리라고 말한다.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도 않는데 왜 그런 물건들을 계속 보관하느냐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한다.

“내 죽고 나면 버려라.”

가족들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지만, 내게는 제법 진심이 담긴 말이다. 그것들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젊은 날의 추억이 들어 있고, 수많은 영화와 함께 보낸 시간이 담겨 있다. 비디오 재생기를 볼 때마다 영화보다도 영화를 보던 시절이 떠오른다.


안소니 퀸은 그런 추억 속에 자주 등장하는 배우다. 그는 잘생긴 미남 배우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누구보다 강한 존재감을 가진 배우였다. 그의 연기에는 흙냄새와 땀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는 영웅보다 인간을 연기했다.


《길》의 잠파노는 거칠고 무지한 남자였지만 결국 사랑을 잃고 후회하는 인간이었다. 《25시》의 요한 모리츠는 역사의 폭력에 휘말린 평범한 농부였다. 《사막의 라이온》의 오마르 무크타르는 늙어서도 신념을 잃지 않는 지도자였다. 그가 연기한 인물들은 모두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역사의 풍파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내가 안소니 퀸을 좋아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의 영화들은 성공이나 영웅담보다 인간의 삶 자체를 이야기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끝내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비디오테이프는 자취를 감추었고 CD도 점점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는 휴대전화 하나만 있으면 세계의 영화와 음악을 언제든 즐길 수 있다. 편리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가끔은 불편했던 시절이 그립다. 영화를 찾아다니던 수고로움이 있었고, 어렵게 구한 작품을 품에 안고 돌아오던 설렘이 있었다. 지금은 영화를 쉽게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설렘만큼은 함께 사라진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다.


오늘 안소니 퀸의 기일을 맞아 그의 영화들을 떠올리다가 결국 내 삶의 한 시절을 돌아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소장하고 있는 비디오와 CD는 영화 목록이 아니라 추억 목록인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작품의 제목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처음 보았던 날의 감동과 그 시절의 나 자신이 함께 담겨 있다.


언젠가 가족들은 내가 남긴 비디오 재생기와 CD 재생기를 정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물건들과 함께했던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안소니 퀸의 영화가 그랬듯이, 좋은 영화는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사람의 마음속에 남는다.


오늘 그의 기일에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세월은 흘러도 추억은 늙지 않는다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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