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늘 집으로 간다”
나는 고향인 이곳 지수를 벗어나 타지 생활만 53년 했다. 진주서 6년, 그리고 서울서 47년. 서울에서의 생활은 태릉에 자리 잡고 있는 육군사관학교 군 복무 생활까지 포함한다. 내 일생의 거의 대부분이 타향살이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조부모님, 부모님이 살다 돌아가신 이곳 지수를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막연하지만 단단한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마치 뿌리가 보이지 않는 나무처럼 내 삶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나는 그 뿌리를 믿으며 살아왔다. 남들이 시골 재산을 정리해 도시의 편리함을 선택할 때에도, 나는 고향의 집과 논밭을 끝내 놓지 않았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기다림이 내게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기다림이 끝났다. 7년 전, 나는 대학교수직 정년퇴직과 함께 이곳으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품어왔던 염원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막상 돌아와 보니, 내가 찾아온 곳은 단순한 ‘고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떠나온 적이 없는 어떤 자리, 늘 내 안에 함께 있었던 ‘근원’에 가까웠다.
독일의 낭만주의 작가 노발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늘 집으로 간다.” 이 짧은 문장은 내 삶을 설명해 주는 긴 이야기와도 같다. 서울에서의 47년이 결코 헛된 방황은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시간은 결국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말한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떠나왔으나 끝내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의 근원이며, 동시에 끊임없이 되돌아가려는 내면의 방향이다. 나는 오랜 세월 외부를 향해 살아왔다. 학문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슬롯적 역할을 다하며 ‘밖’으로 확장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제 이곳에서의 삶은 그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점점 더 안으로, 더 깊이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노발리스가 말한 “신비로운 길은 내면으로 나 있다”는 문장을 요즘 자주 떠올린다. 과거에는 그 말이 다소 관념적으로 느껴졌다면, 지금은 매일의 일상 속에서 그것을 체험한다. 아침에 정원의 흙을 만지고, 나무의 가지를 다듬으며,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내면으로 향하는 조용한 걸음이다.
서울에서의 시간은 직선이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성취를 향해 달려가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곳의 시간은 원을 그린다. 계절이 돌고, 씨앗이 자라 꽃이 피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그 순환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를 묻지 않는다. 이미 도착해 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늘 도착해 가는 중’이다.
노발리스가 “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우리는 어느 한 순간 완전히 도착하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는 존재다. 나 역시 이곳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더 깊은 평화로, 더 고요한 나 자신으로, 더 근원적인 어떤 상태로.
때로는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예전에는 그것이 삶의 끝이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어쩌면 또 다른 ‘귀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노발리스가 사랑하는 이를 잃고서도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귀환으로 받아들였듯이, 나 또한 언젠가는 이 생을 벗어나 더 큰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이곳에서의 시간이 남아 있다. 정원을 가꾸고, 글을 쓰고, 조용히 하루를 살아가는 이 시간 자체가 이미 귀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먼 곳을 바라보지 않는다. 발밑의 흙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저녁 하늘의 빛 속에서 충분한 의미를 찾는다.
돌아온다는 것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삶 전체를 하나로 이어 완성하는 일이다. 시작과 끝이 만나 하나의 원이 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나는 이제 안다. 53년의 타향살이는 떠남이 아니라 귀환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의 삶 역시 완성된 정착이 아니라, 여전히 계속되는 귀가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늘, 집으로 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