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비가 그치더니, 오늘 또다시 봄비가 내린다. 구름은 몸이 지나치게 무거워지면 스스로를 비로 쏟아내고 흩어진다. 마치 이 시대의 과도한 말, 각종 정보, 미세먼지처럼 삶을 무겁게 만드는 것들을 떨쳐내려는 듯, 봄비는 연이어 세상을 적신다. 아마도 자연은 이렇게 스스로를 정화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내면에 잔뜩 쌓인 무게까지 함께 덜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가 잠시 멈춘 틈을 타 아내와 함께 마당 화단을 둘러본다. 절정을 지난 일부 영산홍은 꽃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했고, 그 옆의 다른 종류들은 이제 막 꽃망울을 틔우고 있다. 이 영산홍은 조경학 교수인 막내 동생의 추천으로 심은 것이다. 마당 건너 담벼락을 따라 ㄱ자 형태로 넓게 자리 잡은 이 꽃들은 수령이 20년을 넘어선 덕분에, 꽃이 만개할 때면 그 모습이 단연 장관을 이룬다.
종류를 세어보니 10가지가 넘는다. 각기 다른 색과 형태를 가진 이 영산홍들이 어우러질 때, 그 조화의 아름다움은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선 감동으로 다가온다. 동생은 이 꽃들을 추천하며 “형님, 활짝 피면 죽여줍니다.”라고 했는데, 실제로 만개한 모습을 마주하면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날, 빗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영산홍 꽃송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나는 그 아름다움에 빠져 꽃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했다. 어떤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지고 기쁨이 일어났다. 그 순간의 감정은 ‘무심한 즐거움’, 다시 말해 칸트가 말한 ‘무관심의 쾌감’이었다.
욕심과 불안, 근심으로 가득 찬 현실 속에서 그 순간만큼은 해방감을 느꼈다. 내면 깊숙이 묶여 있던 것이 풀리며, 나 자신이 자유롭게 유희하는 존재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 감동의 순간에, 문득 오래전 본 영화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교도소장의 방에서 클래식 음악을 틀어 온 감옥에 울려 퍼지게 하는 장면이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자 죄수들과 간수들 모두 동작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며 선한 눈빛으로 그 음악에 젖는다. 그들은 잠시나마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자유를 느꼈을 것이다. 음악의 아름다움이 현실의 굴레를 이겨낸 것이다.
오늘 나에게 그 음악은, 다름 아닌 빗방울 맺힌 영산홍이었다. 감옥을 탈출하지 않고도 삶의 무게에서 잠시나마 해방되는 것, 바로 그것이 아름다움이 지닌 힘이다. 아름다움은 우리의 감각을 열고, 감정을 해방시키며,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만든다. 그래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과 다름없다.”는 말이 나오는지도 모른다.
그 감동을 놓치기 싫어 다시 꽃밭을 맴돌았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한 송이를 골라 오래 바라보았다.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만져보고, 마음속으로 말을 건네며 꽃과 교감을 시도했다. 그들과 하나 되어 이 만남을 즐긴다. 꽃이 이 순간, 이 자리에 피어 있어야 하고, 내가 살아 여기에 존재해야 한다. 그러니 이 만남은 실로 천재일우(千載一遇)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진정한 만남은 우연이 아닌, 존재의 깊은 인연에서 비롯된다. 친밀한 관계가 깊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듯, 자연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도 시간과 집중이 요구된다. 대충 지나쳐서는 꽃과 친해질 수 없다. 꽃과 친해지면, 새로이 배운다. 말없이 멈춰 서서 바라보는 한 폭의 장면은 때로 수많은 바카라보다 더 깊은 가르침을 준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했다. 큰 도(道)로 들어가는 문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나름의 이치를 품고 있으며, 그 이치는 서로 통한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이치가, 짐승에게는 짐승의 이치가, 그리고 꽃에게는 꽃의 이치가 있다. 하나의 사물에 담긴 이치를 들여다보다 보면, 그것을 통해 더 넓은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참된 깨달음은 결코 문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깨달음에 머무르지 않고, 꽃이 보여주는 세계에 조용히 잠긴다. 꽃은 쉽게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다. 조용히 멈춰서서 마음을 내어주지 않으면, 그 생명의 기운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게 잠겨 있을 때, 우리는 단순한 배움을 넘어 ‘영혼의 양육’이라는 깊은 차원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꽃은 나의 둘도 없는 스승이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과의 만남은 삶 속에서 흔치 않은 축복이다. 우리의 삶에도 그런 만남이 종종 찾아오기를, 그리고 그 만남이 아름다움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끝)